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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온 Aug 26. 2020

토다 (Todah)

더할나위 없이, 감사

토다 (Todah)

장례식, 그리고 눈 다래끼


 방송쟁이에게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은 당연한 숙명이지만, 그날따라 유독 루틴한 일상에서 벗어난 변수들이 많이 생겨 밤늦게까지 골치가 아팠다. 겨우 일을 마무리 하고 한숨 돌리려는데.. 밤늦게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외할머니의 부고 (訃告) 소식. 며칠 전, 병원에 다녀왔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니 할머니가 나를.. 못 알아보시더라..”     


 긴 침묵 속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오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엄마의 복잡한 감정들. 그때부터 엄마는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기억에도 남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꿈속을 헤매느라 밤새 잠을 설치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눈에 다래끼가 나 있었다. 마치 내 눈이 ‘그렇게 괜찮은 척 한다고 정말 괜찮을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도 치르기 전에 눈이 삐꾸가 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어 서둘러 병원에 달려갔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간단한 약 처방을 해주었다.      


 부랴부랴 부모님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청주 장례식장.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까지도 사실, 외할머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상복을 입고 접객을 하고 있던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아팠다.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 약한 소리, 우는 모습 한 번 보인 적 없는 강인한 엄마였는데.. 엄마의 아랫입술이 심하게 터져 있었다.      


 102세. 천수를 누리신 외할머니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호상(好喪)’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호상이라고 말한들, 자식의 마음에서 어머니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자신을 억누르는 엄마에게 입술이 반항을 했을 거다. 내 눈 다래끼처럼.      


 상복을 입고 접객을 하는 동안에는 이별에 대한 아픔이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 친척들, 지인 분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고.. 찬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장시간 접객 하느라 퉁퉁 부은 다리에 신경을 쓰느라 슬플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입관 전 인사를 하기 위해 안내받은 곳으로 갔는데.. 염을 한 할머니 시신을 보고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더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나날들이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는 이미 싸늘해진 발에 후손들의 온기를 전해주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발인하는 날이 다가왔다. 여태까지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는 강인한 엄마였는데.. 화장(火葬)을 하는 내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 발인 전, 이모가 드시던 신경안정제를 얻어 드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십 여 년 전, 아빠의 교통사고 이후로 간혹 힘든 일이 생기면 심장이 두근거려 그때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곤란할 만큼 힘들었던 거다. 그 힘든 마음속에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했던 내 후회보다 더 큰 후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를 모시고 싶어 했다. 외할머니도 엄마와 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시골에서 바쁘게 농사일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외할머니를 번쩍 안아 식탁으로, 화장실로 옮길 만큼의 체력과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화장실에서 심하게 넘어져 다친 뒤로 행여 자신 때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할까봐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셨다. 엄마는 자신과 살기 위해 찾아왔던 외할머니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후회했다.      


 2시간 가까이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린 외할머니의 뼛가루는 유골함에 담겨 납골당으로 모셔졌다. 납골당에 유골함을 안치할 자리를 고르는데.. 외삼촌은 눈높이에 딱 맞는 로얄층 대신 맨 위에 정중앙 자리를 고르시며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으셨다.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왜 로얄층에 모시지 않을까 조금 섭섭했다.      


 발인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가장 힘들고 아프고 괴로울 엄마는 자식들 밥 먹이겠다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먹이고 치우셨다. 그렇게 기절하듯 잠든 와중에도 자식들 삼계탕을 먹이겠다며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가스렌지 앞을 오가셨다. 자신과 데칼코마니 같은 존재인 외할머니를 잃고도 엄마는 생전의 외할머니처럼 그렇게 자식을 위했다.      


 당연히 아무 것도 싸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져갔던 캐리어 안에는 엄마가 싸준 음식들과 밭에서 캐 온 감자 고구마들로 가득 찼다. 서울집에 도착한 내게 엄마는 삼계탕 상하지 않게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라.. 잔소리를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청주 집에 내려갈 때 생겼던 눈 다래끼는 약을 먹고 발라도 낫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크게 부어 있었다. 빨리 나으려고 첫날 병원을 찾았는데 대체 왜 점점 더 악화되는지 알 수가 없어 이리 저리 고민하다 이 모든 게 의사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보통 다른 병원에서는 눈에 넣는 점안액을 처방해 주는데.. 이 병원에서는 안연고를 처방해줬다. 약사는 하루 세 번 눈꺼풀에 바르라고 검정색 매직으로 약상자 위에 크게 적어줬고.. 난 시키는 대로 했지만 다래끼는 더욱 악화되었다. 다른 병원에 가서 재처방을 받으려고 했지만 하필 내가 간 병원들 모두 한 시간 가량 대기를 해야 한 대서 포기했다.      


 눈은 점점 더 충혈 되고 심지어 피까지 나자 난, 화가 났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글자를 읽어야 하는 내게 안질환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 다시 안연고 상자를 집어 들었는데.. 문득, 낯선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 눈꺼풀 안쪽에 이 약 일정량을 넣은 후 눈을 깜빡입니다.’ 


 아... 눈꺼풀 위에 아니라 안쪽이었단 말인가. 나는 왜 단 한 번도 연고를 안에 바를 생각을 못했던가. 연고는 몸 외부에 난 상처 위에 바른다는 편견. 눈 안쪽에 난 염증은 점안액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편견. 약사가 말한 눈꺼풀이 외부라고만 생각했지 안이라고 생각은 못했던 나의 아둔한 편견때문이었다.    

  

 순간, 내가 놓쳤던 또 다른 편견은 없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납골당에서 로얄층 대신 맨 위에 정중앙을 선택했던 외삼촌. 외삼촌은 왜 로얄층 대신 그 자리를 선택했을까.. 그때 외삼촌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누구도 외할머니 머리 위에 앉지 않게.. 가장 높은 곳에 계셨으면 좋겠어서..”


 그 어떤 핑계가 아닌, 진심이었을 것이다. 편견이라는 필터를 끼고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그냥 그게 진심인 거다.      


 그리고 우리 엄마. 상중에도 우리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는 엄마의 마음이 겉보기처럼 괜찮을거라 생각한 편견. 언제나 호랑이처럼 강한 모습만 보여 온 엄마 안에 소심하고 연약한 딸의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예쁜 조카들만 안아주느라 정작 왜소해진 엄마를 안아주는 데는 소홀했던 내 모습이 후회됐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깼으면 하는 편견. 엄마의 후회. 외할머니는 자신을 모시지 못했던 딸을 원망하지 않으셨다. ‘않으셨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입관 전 외할머니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 나의 시선은 가장 먼저 외할머니의 얼굴로 향했다. 102세 연세로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풍파 하나도 안 겪은 고운 소녀처럼 외할머니의 피부는 환했고 표정은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자식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절대 그런 표정은 짓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 표정 속에 외할머니의 마지막 인사가 담긴 듯 했다.      


 ‘너희들 덕분에 한 세상 즐겁게 잘 살다 간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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