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그들은 우애가 너무 좋아 언제나 세트로 다가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힘들어할 엄마가 걱정 돼서 매일 안부전화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전화를 대신 받은 아빠가 머뭇 머뭇 뭔가 말하고 싶은데 차마 하지 못하고 꾹 눌러 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그 날.. 끝내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은 내 자신을 책망했다.
아빠는 말하고 싶었던 거다.
“네 엄마가 아파서 입원을 했어.”
자식들 걱정할까봐 단 한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아빠에게 엄포를 놓았던 엄마 때문에 며칠 동안 혼자 끙끙대며 엄마를 보살피던 아빠는 결국 내게 진실을 털어놓았고.. 동생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지만 아빠를 닮은 나 역시 결국 동생들에게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나을 거란 생각에.
아빠가 진실을 털어놓은 후에도 우리 엄마는 내가 진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 끝끝내 입원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내가 전화할 때마다, ‘감기 다 나았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말만 했다. 엄마는 늘 그랬다. 무릎 시술을 할 때도, 복숭아 뼈에 물이 차서 고생할 때도, 발가락이 휘어져서 걸을 때마다 아플 텐데도.. 늘 괜찮다고만 했다. 늘 당당하고 강인한 엄마의 모습만 보고 자라서인지 어릴 땐 정말 엄마의 괜찮다가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엄마의 괜찮다는 진실이 아니라 배려라는 걸.
허혈성 장염. 엄마는 병원에 가기 전까지 복통을 호소하며 피를 쏟았고.. 놀란 아빠는 서둘러 응급실로 데려갔다. 결국 입원을 하게 된 엄마는 며칠 동안 쫄쫄 굶으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에 있는 엄마보다 더 마음을 졸인 건 아빠였다. 엄마 없는 아빠는 앙꼬없는 찐빵이었던 거다. 농사일부터 집안일까지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기에 엄마 없는 아빠의 일상은 불안 투성이였던 거다. 그러니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긴긴 시간이 아빠에겐 감옥살이를 하는 수십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병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처음 엄마의 반응은 와도 안 볼테니 절대 오지 말라는 거였다. 곧 퇴원할거고 바쁠텐데 왜 오냐는 거였다. 하지만 이것도 거짓말이다. 엄마 마음속의 진짜 이유는 이거다.
‘내가 이러고 있어서.. 반찬이며, 음식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데.. 뭐 하러 와!
너 빈손으로 보내면 내 마음이 안 좋아. 애미 노릇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엄마는 전생에 나한테 빚을 졌나보다. 평생 그 빚을 갚으려고 나만 보면 뭘 그렇게 챙겨주려고 하나보다. 그럴 리가.. 그냥 그게, 엄마의 마음인거다. 자식에게 뭐든 내어주고 싶은 마음.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주고 싶은 마음.
엄마는 내게 약속했다.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고. 다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겠다고. 이유는 간단했다. 자식들 걱정하는 게 너무 싫단다. 할 일도 많은 바쁜 자식들이 행여 자신 때문에 신경 쓰느라 피해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우리 엄마.
이 날, 아빠는 내게 말했다. 진단명이 나오기 전까지 혹시 대장암일까봐 불안했던 엄마는 아빠와 미래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절대로 지금 죽을 수 없다고 했단다.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동생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는데.. 아직 혼자 남아 있는 나를 두고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거였다. 여태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한 번도 다그친 적 없는 부모님이었다. 행여 내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배려한 거였지만 그 깊은 속내에는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혼자 남게 될 딸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 때문에 오래 살겠다니.. 난 효녀네!”
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제부터 정말 효녀가 되려면 엄마의 거짓말을 간파해야 한다. ‘괜찮다, 엄마는 정말 괜찮다.’라는 엄마의 거짓말 속에 숨겨진 엄마의 진심을 알아내 케어해주는 것. 그게 거짓말쟁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