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지?
수능도 끝나고 대학교도 합격해 홀가분하고 세상 즐거울 시기에 별생각 없이 읽었던 책 한 권이 있었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스토리를 담은 SF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수십만의 인류는 자신과 후손의 운명을 걸고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들은 지구 밖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 수많은 세월 동안 우주선에서 대를 이어가며 항해를 했고,
결국 그들의 자손 남녀 한 쌍이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는 데 성공하여 그 행성의 최초 인류가 되었다. 는 이야기.
마치 전설과도 같은 이 허무맹랑한 SF소설은 이상하게도 내가 이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류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떠한 형태로, 언제 시작되었나?
인류의 끝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 멸종하기 전 남은 마지막 인류는 누구인가?
책의 어떤 부분이 이런 근본적인 질문세례의 트리거가 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머릿속을 지배해버린 인간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의문에 일단 뛰어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뭐, 수능도 끝난 고3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으니, 일단 궁금해진 질문을 곱씹으며 몽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끝없이 있어왔고 생물학의 형태로 수업시간에 익히 배워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책으로부터 비롯된 이 질문들은 정서적 불안감이랄까, 혼란스러운 감정을 함께 가져왔다.
수십억 년 전 만들어진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시작은 분명히 있었고, 수십억 년 뒤 지구가 결국 태양에 잡아먹히기 전에 끝 또한 분명히 있을 테다.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끝나게 될지 내가 알 방법이야말로 있을 것인가?
태초에 신이 있었고 나를 만드셨다는 종교적 이야기는 미안하게도 내게는 해답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진화론이 정답일까? 이 또한 완벽한 답변은 되지 못했다.
무기체에서 어떻게 생명이 태어날 수 있어…! 사실 이 우주 전체의 존재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가장 최초의 생명체 조상(너무나도 정체가 궁금한)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런 고뇌를 하는 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왔을까.
정교한 신체 시스템을 가진 지구의 생물들은 수 억년에 걸쳐 참으로 경이로운 진화를 거쳐왔을 터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소설에서처럼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해도, 지구도 태양계도 은하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날이 온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미물에서부터 지구에 뿌리내린 찬란한 문명까지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지금 하루하루 밥 벌어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가 굉장한 부자가 되어서 미친 듯이 돈을 쓰거나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서 폭정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우주 속 찰나의 순간일 뿐.
고요한 우주의 영원 속 잡음조차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어차피 영겁과도 같은 우주의 시간에 아무런 의미조차 남기지 못하는데 말이다.
태어나버렸으니 일단 살고는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업적을 이루고 보람찬 일을 하는 그 모든 행위가 결국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 것이다.
위인이 되어 죽어서도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어떤 업적조차 인류가 종말 하면 기억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지구가 망해도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지만 그 어떤 행동이라도 허무한 결과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마음 깊이 때려버린 답 없는 질문에 나는 극심한 두통에 앓아누워버렸다.
작게는 대입을 위해 공부했던 그날들의 무의미함에, 크게는 내 삶 자체의 부질없음에 모든 의욕이 꺾여버린 탓이다.
그리고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짙은 우울감으로 조용하고 폭풍 같은 날들을 보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인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애썼으나
수억 년 후 불구덩이가 되어 태양에 집어삼켜지는 지구와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의 인류를 상상할 때마다 그의 무력감과 외로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나 또한 무력해지곤 했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수없이 토론해 왔던 주제일지 모르지만, 난 철학에는 일가견이 없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했다.
당장 현생을 살아야 하는 나는 이 니힐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당히 와닿을만한 나만의 해답이 필요했다.
일단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근본적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근본적인 해답이란 게 있을까? 공수래공수거, 무에서 태어나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채 100년도 못 사는 존재 주제에 지구의 수명까지 걱정해가면서 인류의 의미를 너무 거시적으로 생각해버린 건 아닐까 싶어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말이 쉽지, 생각을 접는 과정 또한 매우 힘들었다.
생각을 멈추기란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생을 고민해야 할 숙명적인 고뇌다, 조급하게 지금 당장 답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약간은 잠겨있던 우울에서 벗어난 듯했다.
우선 순간순간을 살아나가기로 했다. 시야를 의도적으로 좁혀 지금 당장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단 밥을 먹자.
몇 번 씹었는지 세어본다.
얼마나 맛있는지 생각하자.
(비록 맛있는 밥을 먹어서 느낀 이 기쁨이 의미가 없을지라도…!) <- 이런 생각은 자제하자!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재밌게도 이 실없는 다짐이 존재의 의미를 영원히 찾아 헤매는 것을 잠시 멈추는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다.
알고 있다.
행복하든 말든 티끌 같은 나의 존재는 우주 역사에 스쳐 지나가는 탄소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즐거운 감정으로 인해 즐거운 찰나를 살아낼 수 있다면 그냥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전히 나를 이루는 기저의 감정은 우울의 바다로 가득 차 있으나 순간순간은 행복하려고 노력하려 한다.
다른 존재들도 비슷하겠지. 그게 사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