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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r 25. 2022

문란한 인간을 가려낼 수 있다는 착각(2)

  정확히 내가 19금 웹소설 교정 알바를 하기 1년 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처벌받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법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그 당시에 어떤 이름 모를 나라의 어떤 대학교의 어떤 교수가 여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에 나세상 물정 몰랐던 새내기였지만, 성폭력을 행사한 교수의 은퇴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1~4학년까지의 재학생들이 연극홀에 모두 모여 회의하던 현장에 참여한 적 있었기 때문에 사건의 대략적인 맥락은 잘 알고 있었다. 회의에 직접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세 명의 여자 선배들은 교수가 방학 때 만든 소설 스터디 뒷풀이 이후에, 그리고 사적으로 가진 술자리 이후에 그 일을 저질렀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한 여자 선배가 처음 피해 사실을 학과장 교수에게 알렸을 때부터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는 일관되게 부인했지만, 그 이후로 여론이 지목된 교수의 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피해당했다고 주장한 여자 선배 둘이 추가로 등장했을뿐만 아니라, 지목된 교수가 연구실에서 상담을 하다가 남자친구는 있는지 성관계는 해봤는지 떠보듯 물어봤다고, 술에 취한 여학생을 힘들게 부축하며 모텔 밖으로 나오는 것을 봤다고 고백하는 선배들도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과의 평판을 생각한 교수와 선배들 모두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경찰 수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진 내용들은 아니지만, 정황상 교수에게 잘못이 있다는 생각을 학생, 교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하고 있었다. 만약 지목된 교수가 정말 잘못 없이 떳떳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학과장 뒤에 숨어서 억울하다는, 음모에 휘말린 것 같다는 변명의 말만 늘어놓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런 대응이나 법적 조치도 하지 않고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그 좋은 교수직을 버린 채 며칠 만에 홀연히 학교를 떠나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한때 문학의 여러 장르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룬 천재 작가의 몰락치고는 주변에 아쉬워하거나 은혜를 기리는 목소리 하나 없었던 조용하고 허무한 결말이었다.   

  




  오래 전에 긴 고민 끝에 의뢰인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졌던 만남과 헤어짐은 적어도 내게 뜻밖의 아쉬움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일 낮의 점심시간의 만남이었으므로 그전까지 우려했던 술자리는 아니었고, 주메뉴인 닭도리탕에 맥주 한 잔 곁들이려는 의도도 없이 의뢰인은 엄마처럼 내 그릇에 살코기만 계속 퍼 담아 줄 뿐이었다. 하는 얘기들도 고등학생 때 처음 소녀 감성으로 연애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내용의 글쓰기 동기나 자신이 생각하는 웹소설 시장과 문학 시장의 차이점, 어렸을 때부터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화 기관이 좋지 않아 잘되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전부였다. 그 외의 대부분 시간에는 내가 고등학생 때 운 좋게 받게 된 문학상이나 내가 웹소설보다 문학을 더 좋아하는 이유, 소설과 시 수업시간에 배우는 수업 내용에 관해 말하는 걸 줄곧 들어주기만 했다. 사실은 분야가 전혀 달라 관심이 없었을 텐데도 내 말에 최대한 경청하고 여러 번 되물어 가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의뢰인은 사람 대 사람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내가 어린 남자라는 사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내 저급한 의심은 그 짧은 시간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2016년에 성폭행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실망감을 준 유명한 문학 작가들과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교수. 그리고 자신이 쓰는 야한 이야기와 전혀 무관하게 인간적인 배려로 나를 대했던 19금 웹소설 작가. 내가 직간접적으로 접한 일련의 사례들만 놓고 보면 적어도 글의 종류와 그 글을 쓴 사람을 연관 지어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두 개 학교의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면서 만난 순박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고, 질문받는 시간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각각의 좋은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하고 이상하고 괴짜 같았던 학생들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글의 장르와 연관 짓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은 정말 다 제각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세상에 착하고 나쁜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알고 보면 직업이나 권력과 지위 또한 그 사람의 내면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을 문학을 통해 배워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을 손쉽게 판단해서 대하는 잘못을 종종 저질러 온 것 같다. 과거에 내가 19금 웹소설을 쓰는 의뢰인을 속으로 손쉽게 비난함으로써 19금 웹소설 만들기에 참여했던 나 자신의 알량한 체면을 은연중에 지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늘 겉으로만 깨어 있는 척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씁쓸한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






(Ps. 매일 직장 일 끝나면 머릿속에 온통 글쓰기 생각뿐이지만, 정작 나오는 건 늘 성에 차지 않는 분량의 가난한 글 줄기뿐이네요ㅎㅎ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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