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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06. 2022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그 흔한 말(3)

식당 사장이 주는 음식을 쉽게 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

  “성우 씨, 여기서 일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혹시라도 빌미를 잡아 해고할까 싶어서,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가 써달라는 근로계약서도 특별히 다 써주겠다는데, 대체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야?”    

 

  사모님이 언급한 근로계약서는 사실 전날에 내가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원래는 법적으로 계약서 작성 의무가 고용주에게 있었기 때문에 양식을 프린트해서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고 나서도 약간의 부당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인심 써준다는 식으로 지금 이렇게 생색내는 말을 들으니 더 속이 상했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근로계약서 작성은 원래 사업주의 의무이고, 어겼을 때 벌금을 내는 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더는 대화를 하기 싫다는 양 일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면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건 아니라고, 말로 오해를 풀어보려고 했을 뿐이었다고 거듭 말했다. 사모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알바 자리에서 잘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말을 듣게 된 것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장의 입을 통해서였다. 내게 전화를 한 굵은 목소리의 사장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내 말은 조금도 들을 의향이 없다는 듯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내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당황해서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사이에 사장은 듣자 하니 밥도 주고 반찬도 싸줬다는데 불만이 그렇게 많으시냐고 한 차례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사모님이 그런 사실까지 다 일러바쳤다는 사실만큼은 조금 낯설게 받아들였다.



  사장은 오늘까지 일한 시급을 입금해줄 테니 계좌번호나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머릿속의 어수선함을 느끼는 와중에 별수 없이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왜 그동안 사모님이 내가 일하는 것을 그리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비난의 말을 했는지를. 왜 내게 그토록 기대하는 게 많았는지를. 뒤늦게 모든 것들이 납득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밥과 반찬도 가족처럼 생각해서 준 것이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받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가 담겨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설령 처음에는 호의적인 마음에서 주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모님은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면서 줬던 것을 나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받았기 때문에 결국 그런 입장 차이만큼 점차 서로에게 실망감과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됐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이미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한 마당이었다. 사장의 용건이 사라졌으니 나도 별수 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고 답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텅 빈 방안을 채우듯 입 밖으로는 자꾸 한숨이 빠져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한번 뭔가 납득되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에 내가 깨달은 사실과 관련된 기억 하나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것은 구내식당에서 일하시는 주방 아주머니 한 분이 언젠가 내가 건넨 비타민씨를 한사코 거부했던 장면이었다. 당시에 내가 빨리 감기가 나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비타민씨 하나를 건넸을 때, 그분은 집에 많이 있다는 말로 둘러대면서 끝까지 받지 않으려고 하셨다. 왜 그러셨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그분과 다른 주방 아주머니들이 평소에 사모님을 대했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일례로 내가 일하던 그 기간 동안 주방 아주머니들은 사모님과 가벼운 인사말 외에 어떤 사담도 나누지 않으셨다. 나와 사모님에게 늘 손수 싸주었던 반찬을 한 번도 스스로 챙겨가지 않으셨다. 이제 보니 그런 거리 두기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철저히 유지하기 위한 태도였던 게 분명했다. 나와 다르게 그분들은 이미 인생의 경험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직장에서 조건 없이 건네지는 순수한 호의는 없다는 것을.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결국 오해가 생긴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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