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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30. 2022

차라리 먼저 속였더라면(1)

알바 면접과 거짓말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오래전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는 화가 많이 났는데, 꼭 원인 제공을 한 사람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문학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작은 잘못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답답하긴 하지만, 상대방의 잘못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한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들도 내겐 중요했다. 그런 마음가짐은 내 문학관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내게 문학을 가르쳐준 비평가 교수님께서 언젠가 수업 시간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문학과 일상은 서로 담을 쌓아서는 안 된다고. 문학이 일상에 책임을 질 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일상도 문학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생각해보면 다소 추상적인 말이긴 했지만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문학은 마땅히 사회 참여적이어야만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글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가치를 드높이는 게 문학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직접적인 설교조는 아니었지만, 교수님의 말은 듣는 순간 곧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은 나도 예술지상주의적이기보다는 교수님처럼 사회 참여적인 글을 쓰고 싶었고, 그런 메시지를 가능한 진정성 있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문학의 가치를 학문 이상으로, 거의 종교인처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열성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설마 문학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확히 세상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건 문학뿐이라는 생각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런 섣부른 생각 때문에 세상을 오히려 균형감 있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문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사건들을 간접 경험하고 문제의식을 더욱 많이 갖게 되다 보니 평범한 일상에서도 늘 부조리한 일들에만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타인의 부도덕성을 더욱 잘 감지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린 나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을 지키지 않거나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해심이나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그 시기에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많았는데, 특히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크게 반영되는 아르바이트 면접을 거치면서 자주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내게 거절 의사를 밝히는 사장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이를테면 내가 아는 한 식당에서 서빙이나 계산과 같은 단순 업무는 남자든 여자든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장들은 여자 알바생이 꼼꼼하게 일을 더 잘하기 때문에 남자는 구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말 없이 순순히 돌아갔지만, 속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식당 문 앞에다가 여자 알바생만 구한다는 말도 함께 써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왜 그런 문구는 또 당당하게 내 걸지 못하는 것인가.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걸 자기도 알아서 저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화가 난 것은 편의점에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어떤 편의점 점장이 남자의 경우에 스물다섯 살 이상만 받는다고 하면서 내가 가져온 이력서를 돌려준 적 있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갑자기 영장 나왔다고 하면서 도망간 남자애들이 이제껏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고, 편견인 것 같다고 단호히 말했지만, 점장은 고개를 저었다. 화가 난 나는 이력서를 낚아챈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중식집에서는 사장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사장은 나와 얘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내게 얼굴이 하얀 데다가 말이 느려서 주방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의심의 말을 늘어놓았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가능한 끝까지 유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척 보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속으로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달려야만 하는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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