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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30. 2022

차라리 먼저 속였더라면(2)

알바 면접과 거짓말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런 유형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 당시에 내가 견디지 못했던 유형은 따로 있었다. 하루는 오전에 기대를 하고 낚시용품점에 찾아간 적 있었다. 그곳을 운영하는 30대 정도의 사장과 사원은 내게 어느 학교와 무슨 학과인지를 물어보고 나서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둘은 내 대답으로 인해 우연히 떠오른 ‘책’이라는 소재를 시작으로 군대 내 개인 정비 시간에 읽은 책들이나 군 복무기간 중에 딴 기술 자격증, 오래전에 친 수능 시험 등에 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면접을 보러 온 입장에서 사적인 대화에 끼어드는 게 마땅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반응도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둘 사이의 잡담이 멈추고 내게 다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면접에서 할 법한 질문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지역 내 재개발 소식에 관해 얘기하고 하고 있던 사장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서였다.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얼굴이 다소 무뚝뚝했다. 


  “성우 씨, 오늘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의논해 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 줄게요.”


  그 말에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얘기를 얼마나 나눴다고 나를 내보내려는 것인가 싶어서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혹시 지금껏 두 사람이 내 앞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던 게 어쩌면 일종의 시험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날에 전화를 걸었을 때 사장이 편의점보다도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오히려 물품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을 거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사장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어색해지지 않도록 자주 말을 걸어오는 붙임성 있는 지원자를 선호했을 것 같았다. 나는 왠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농락당한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 식의 거짓말 때문에 화가 난 것은 햄버거 가게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때보다도 정도가 심하다고 느꼈다. 처음에 사장은 내가 아르바이트 경험은 많지만, 주방일은 여태껏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결정을 망설이는 눈치였다. 나는 믿음을 주기 위해 자취를 오래 해봐서 요리든 설거지든 잘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사장은 고민 끝에 의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내일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을 발급한 뒤에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낸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사장의 적극적인 제안에 믿음이 가기도 했고, 어차피 일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도 자신 있었다. 사실상 면접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내비치며 약속을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인사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이른 저녁 시간이었다. 대학가를 빠져나오면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얼마 뒤에 잡혀 있는 다른 면접 일정은 취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햄버거 가게 못지않게 괜찮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아깝긴 했지만, 그럼에도 하루에 두 군데 다 면접을 보러 가는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사실상 햄버거 가게 면접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또 다른 면접을 보러 가는 것 자체가 둘 사이에서 간을 보고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인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라도 다른 사장이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있는지, 다른 곳에도 면접을 보러 갔는지 물어보면 거짓말을 할 자신도 없었다. 


  물론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나 또한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천성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문학을 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인 것 같았다. 만약 거짓말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런 부도덕 정도는 일상에서 충분히 허용 될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먼저 가져야만 하는데,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해선 안 되는 비겁한 타협인 것 같았다. 부도덕을 부도덕으로 바라볼 줄 아는 민감함을 한순간이라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왠지 문학을 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훼손 돼버리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애초에 마음먹었던 대로 면접 일정을 취소하기 위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입력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결정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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