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 / 스틸 앨리스
어느 순간 쉬운 단어가 기억나지 않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란, 가끔씩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때는 멀티태스킹은 자신 있다고 자부했던 때도 있었고, 아이들이 커가도 아이들과의 소통에는 정말 자신 있었는데... 어느새 나를 바라보니 한 가지 일도 집중하지 않고서는 자꾸 실수를 연발하고 있고,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잘 못 알아듣는다던가 아니면 사소한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이 자꾸만 생겨난다.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언어학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는 어느 순간 쉬운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고, 약속을 잘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앨리스, 하지만 소중한 시간들 앞에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비극과는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줄리안 무어가 가지고 있는 격조 있고 우아한 이미지는 알츠하이머로 인해 앨리스가 흐트러지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감동을 준다. 자신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며 앨리스가 보여주는 그 당혹스러운 눈빛은 정말 쓸쓸해 보였다. 앨리스의 초점 잃은 눈빛을 볼 때면 마치 그녀 내부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다. 앨리스를 보면서 삶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그녀가 내적인 감정의 혼란을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가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집 안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애쓰던 모습, 특히 끝까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차라리 암이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 부분은 가슴 깊이 공감이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앨리스는 마냥 좌절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제목처럼 어떻게든 계속해서(still)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앨리스로 남아있고자 했다. 알츠하이머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도 알츠하이머 학회에 나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나는 날마다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평생 동안 기억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이제 모두 사라져 갑니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상실'을 '기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삶 속에서 '상실의 기술'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최근에 새롭게 잃어버린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하나씩 삶에서 놓아주기로 하자. 코로나 바이러스로 잠시 모든 일상이 중단된 기분이 드는 요즘, 나도 여전히(still)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