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반려견(犬)'이 있습니다.
끈질기게 앞마당을 사수하여 안방을 차지한 ‘길동이’가 있지요. 벌써 10년 전 꼬질꼬질하던 강아지가 개구리가 아니라 그런지 올챙이 적 기억을 못 합니다.
길동이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짬밥을 찾아다니고, 유박도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괴력의 입맛과 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집에서는 도련님 행세하지요.
한 입 거리 개껌이 아니면 깨갱거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 잘라드려야 하고, 사료에 고깃국물 없다는 밥투정에 매 끼니 다양한 고깃국물을 끓여 바쳤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간이 안 좋아, 기름진 음식을 먹이질 못해 맹 사료만 주었더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결국 탈수증이 왔습니다.
어쩌겠어요, 약은 먹여야지. 결국 팻밀크를 사료에 섞어주고, 백내장으로 고생하는 견님의 눈을 위해 루테인이 들어간 홍삼 영양제를 먹여 드려야 합니다.
키우는 강아지가 밥투정하면 속상하죠.
“난 길동이 집사로 태어났나 봐.”라며 투덜거리는 두부는 노견의 밥그릇 앞에서 울상을 짓습니다.
“야! 그래도 노랭이보다는 낫지.”
'반려묘(猫)' 노랭이는 새끼 때부터 밥 얻어먹으러 우리 집을 들랑날랑하더니 사라졌다, 성묘가 되어 나타나습니다.
동네 묘형님들에게 신나게 얻어터지던 겁쟁이입니다.
그런 놈을 구해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
고기에 소시지, 간식이 넘쳐나던 노랭이 집을 노리던 묘형님들을 쫓아내고 지켜냈지요. 그럼 뭐 합니까. 나가면 어디서 맞고 왔는지, 벌에 쏘였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나타나기 일쑤입니다.
성질은 어찌나 급한지 생선을 주면 씹지도 않고 들이키다, 씹지 못한 뼈가 걸렸는지 캑캑거립니다. 아무래도 사라졌던 동안 구박받으며 지낸 티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이놈이, 얼마 전부터 사료 봉지를 들고 앉은 날 보고 ‘하악질’을 합니다.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이젠 올라타려 합니다. 귀와 꼬리는 낮게 기죽은 듯 내려가 있는데 ‘하악질’이라니 배은망덕한 놈. 저러다 밥 주는 날 한 대 칠 기세네요. 밖에서 약한 놈이 집에선 왕행세 한다더니. 이쁘다 불쌍하다 측은해했더니 이젠 올라타려 합니다.
아님 ‘야옹’ 소리를 모르는 건지.
소심한 노랭이가 우린 집 '반려서(鼠)'로 들어오려는 생쥐를 쫓아주어 참는 중입니다.
현관 앞, 쬐끄만 서생원을 발견하고 어찌나 놀랬는지.
동생 두부가 쥐 끈끈이를 여기저기 놓아두어도 한 마리씩 잡더군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쥡니다. 뱀보다 더 싫다고 말할 수 있죠.
귀촌하고 가장 큰 걱정이 쥐었습니다. 여기저기 날뛰어 다닐 텐데, 내가 주택에 살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되자 집에 들어갈 때도 문을 툭툭치고 ‘도망가라, 도망가.’ 주문을 외우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노랭이가 들어오며 서생원은 사라졌습니다.
짬밥을 좋아하고 사료는 싫어하지만, 재롱떠는 길동이와 짬밥보다 사료를 좋아하지만, 가까이하기엔 먼 배은망덕 노랭이와 그럭저럭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밖으로 나온 길동이를 피해 도망간 노랭이, 묶여있는 하네스를 풀어달라 애걸하는 길동이를 데리고 텃밭에 갔습니다.
“안돼, 또 어디 가서 짬밥 먹으려고? 안돼!”
아침 10시부터 텃밭에 나가 부지런히 풀도 메고, 겨울맞이 작물 갈이를 시작했습니다.
“우에에엑, 언니 뱀. 뱀이야.” 하더니 동새 두부가 돌 쌓인 사이를 호미로 파바바박 마구마구 갈기듯 때리기 시작합니다.
“큰 지렁이 아니야. 우리 집에 무슨? 뱀이 있어!” 난 뱀이 아닌 구렁이 같은 지렁이이길 바랐습니다. 지렁이가 커봐야 뱀만 하겠어요.
“언니 뱀 맞아. 얼굴 내밀다가 쏙 들어갔어.”라며 돌 사이를 째려보고 있는 동생.
'저 녀석은 뱀이 무섭지도 않나?'
"그 정도 했으면 도망가겠지. 물릴지 모르니까 피해"라는 말에도 구멍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부입니다.
“할머니들이 뱀은 죽이면 안 된다던데. 그렇다고 같이 살 수는 없잖아. 어떻게 잡지. 그냥 두면 도망가지 않을까? 백반 그래 백반을 사러 가자.”라며 서성거리며 중얼거리고 있는 날 향해.
“언니 잡았어. 새끼 뱀이야. 와서 볼래. 아니 나 사진 찍어줘. 나 뱀 잡았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뱀을 들고 흔들어댑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방역복을 입은 여자가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뱀을 들고 나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옵니다.
“오지 마. 오지 마. 훠이 훠이 저리 가.”
“사진 찍어 달라고. 혓바닥 날름거릴 때 찍어야 해.”라며 멈춰 섰습니다.
안 찍어주면 계속 다가올 것 같아, 빛의 속도로 핸드폰을 가져왔습니다.
멀찌감치 서서 찍어주려는데, “가까이 와서 찍어야지. 작아서 잘 안 나와.”라며 두부가 다가옵니다.
“오지 마! 줌. 줌 기능 있잖아.”
“언니, 혀가 날름거릴 때 찍어야 해.”
내 동생 대단합니다.
겁이 많인 난, 두부랑 같이 살길 잘했습니다.
“어라, 내가 꼬리를 내려쳤나 봐. 꼬리가 달랑거리네.”라더니 꼬리를 툭툭 칩니다.
온몸에 이상한 전륜이 흐르고 “얼른 저 멀리 던져. 다시는 못 찾아오게.” 하고 소리를 지르자 두부가 텃밭 끝으로 가더니 뱀을 던졌습니다.
나는 처마밑 테이블에 놓여있는 아이스커피를 들이켰습니다.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풀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두부야, 뱀은 알을 낳잖아. 거기다 저놈은 아주 작은 뱀이고…. 텃밭 밑에 뱀 구덩이가 있는 거 아니야!” 순간 내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설마, 한 마리만 보이던데, 돌덩이 걷어냈는데 더는 안 보여.”
정말 어미 뱀을 잃어버린 새끼 비암이길 바라며 손을 열심히 놀려보지만, 눈길은 자꾸 뱀이 나왔던 돌무더기와 뱀이 날아간 곳으로 갑니다.
‘아! 다시 돌아오면 어쩌지.’
“두부야, 우리 집 청개구리 잡아먹으러 왔다 길 잃은 거겠지?”
“그럴지도 모르지.”
전 배은망덕한 노랭이로 만족하고 싶어요.
고양이가 뱀은 안 잡나?
“언니 큰 뱀 나오면 사람 불러야겠지.”
“허거덕, 두부야, 빨리 개구리 다 쫓아버려.”
자연과 함께 사는 우리,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