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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Sep 16. 2023

나는  시골 학교 요리선생님입니다.

귀촌이야기

전 어쩌다 귀촌한 요리사입니다.


귀촌하고 5년 동안 요리가 아닌 나의 새로운 재능을 찾았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집 처마밑바닥과 벽 작업, 수돗가 그리고 벽돌을 쌓기 위해 무작정 골재상을 찾아가 시멘트와 모래가 섞인 몰탈을 사 왔습니다, 그러곤 대야에 물과 몰탈을 섞어 나무막대기로 휘휘 밀가루 반죽하듯 섞어 바르며, 바닥, 벽, 틈새 등을 하나씩 메꾸고 만들어가며 나름대로 미장의 달인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호미 하나로 텃밭을 기어 다니며 땅을 뒤집고 갈아 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 오이, 공심채, 깨, 부추, 그린빈, 청경채, 온갖 쌈채와 허브 등의 온갖 채소를 키우는 작은 농부로 거듭났습니다.


거기다 제가 가진 대단한 재능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주고 있다는 겁니다.      


5년 전의 저는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아들 그리고 조카들과 소꿉놀이나 인형 놀이, 자동차 놀이를 같이 앉아 조곤조곤하고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주지 못했던 엄마이자 고모이고 이모였습니다.

나의 놀이 수준은 말없이 제기차기와 공기놀이 정도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조카가 소꿉놀이나 장난감을 거실에 늘어놓으면 저는 방으로 도망치기 일쑤였죠.

차라리 레고와 같은 블록 놀이라던가,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은 제가 아이들이랑 농담하고 장난도 치며 놀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저의 음식 인문학 수업을 듣던 학생으로부터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요리 수업 권유받았습니다.

산천으로 이사를 오기 전엔 성인이 아닌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지요.

예전엔 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분들은 거의 만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사회적 편향이 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논리에 안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농담을 다큐로 체인지하는 뇌 기능을 탑재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편식을 고치기 위해 하는 수업이라 특별할 필요도, 시간을 다투어 요리할 필요도 없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설명에 선뜻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요리하며 음식 재료들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죠.      


첫 수업, 나의 영혼과 진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된 수업은 12시가 돼서야 끝났습니다. 주방 한쪽 구석에 푹 퍼져 앉아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아이들을 바라봤습니다.

달걀 삶고, 버섯과 양파를 설렁설렁 썰어 프라이팬에 볶고, 브로콜리 데쳐서 구운 치즈에 올리고 올려서 담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었죠.     

 

“선생님 힘들죠?” 커피를 들고 온 양 선생님이 테이블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애들이 자기들끼리만 놀아봐서 그래. 사람들하고 접촉할 일이 없어서 낯가려요.”

“여기 선생님들 많이 오지 않아?” 제가 알기론 내 수업 이외에도 에어로빅 수업도 있고, 학기 중에도 많은 방과 후 선생님들이 오간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시간만 보내고 가는 거지. 수업만 하고 간다 생각하고 편히 해요.” 하고 그녀가 무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만 그런 거야? 아니면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그래?” 난 양 선생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들 만하면 수업이 바뀌니까, 아이들이 정을 안 주죠.”      

그러던 중 아이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걸 봤습니다.


이때다 싶어 저는 아이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교실을 두리번거리다, 레고를 발견하고 레고 테이블 앞에 앉았습니다. 레고를 하나씩 집어가며 조용히 레고 테이블 위에 집과 정원을 만들고, 의자도 배치하며 조립했습니다.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이건 양 선생님이고요, 이건 김 선생님인데 선생님은 없어요.” 하며 제가 만든 정원에 레고 인형을 끼워 올려놓았습니다.

“선생님은 왜 없는데?”하고 물어보자, “선생님은 금방 가니까.”라고 하더군요.

“에이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이나 올 건데 친하게 지내자”라는 말에 “그러니까요.”라더니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색색의 띠가 둘린 막대기 같은 걸 가지고 뛰어갔습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과 요리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을 선택해서 수제비도 만들고, 주방이 엉망이 돼도 아이들이 직접 체에 내린 밀가루로 만든 뚱뚱한 짜장면, 못난이 쿠키와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고구마를 삶아 만든 고구마 크림과 손으로 휘핑한 크림을 올려 케이크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손질해 싱크대에서 씻어, 자르고, 다진 채소와 해산물로 요리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솔직히 엉망진창인 데다 시간도 긴 요리 수업을 좋은 눈길로 바라봐 주진 않았지만 우리는 즐거웠습니다.      


얇은 소고기에 팽이버섯과 채 썬 당근 그리고 노랑 파프리카를 넣어 굽던 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레고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오더군요. 그리고 인형 하나 들고 나를 바라보더니 “선생님은 긴 머리가 좋아요? 짧은 머리가 좋아요?”라고 한 아이가 물었어요.

“난 긴 머리.”하고 대답했었죠.

그리고 머리가 긴 레고 인형이 테이블 위에 만들어진 집 앞에 자리했습니다.


우린 수업이 끝나면 훌라후프도 돌리고, 양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 바깥 놀이터에서도 같이 노는 친구로 발전했습니다.      

겨울 방학 중에 이루어졌던 두 달의 요리 수업이 끝이 났고, 학부모님들의 호응이 좋았음에도 요리 수업은 다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이들이 그리워지더군요. 아니,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외부인이 함부로 찾아갈 수도 없었죠.


이후로 전 아이들 진로 체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나름 산천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선생님이 되어 갈 때쯤 유치원으로부터 두 번의 요리 수업해 달라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갔지요. 아이들과 이산가족을 만난 듯 상봉의 인사를 나누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재료를 정리해 놓자 아이들이 스테인리스 볼과 체를 챙기더군요.

그리고 가루를 들더니 “선생님 체에 내리면 되죠? 선생님은 동생들 돌봐주세요.”라는데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한참 수업하는데 “선생님 창문에? 창문에?” 하며 손가락을 가리키는 거예요. 졸업해 초등학생이 된 녀석 둘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어머! 얘들아, 들어와. 보고 싶었어.”하고 손짓하니 “저희는 졸업해서 못 들어가요.” 하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제가 보고 싶었는지 울먹거리더군요.     

정이란 이런 거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이 산천으로 귀촌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고, 하지 않았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이 산천에 사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저에게 주어진 프로그램용 요리 수업이 아닌, 아이들에게 마음의 요리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요리 수업이 계속되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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