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툴툴 털며 말리는 두부가 시원하다며 앉아 보리차를 한 잔 마시더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언니 맹 미역국 먹어봤어? 기름 둘러 볶은 게 아니고 소고기도 조갯살도 안 들어간 미역으로만 끓인 국.”
“너 전에 끓여줬잖아. 고기 안 들어갔다고 손도 안 댔잖아.”
“아무래도 내 입맛이 변했나? 시원하고 맛있더라.”
"맹 미역국이라고 그냥 맹물만 붓고 끓이는 게 아니야. 기름이 아닌 조선간장에 미역을 오래 볶아서 푹 끓여 시원한 거야."
한동안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하는 두부에게 자극 없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만들었던 메뉴 중 하나였던 맹 미역국. 그때는 멀겋게 미역만 들어갔다며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싫다고 입도 안 대더니, 배가 고팠는지 맛있었단다.
“고기 없는 미역국은 싫은데, 아무래도 내 입맛이 변했나 봐. 언니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동생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고기 없이도 잘 먹었다니 흡족하기도 했다.
“언니 ‘막콜’이 뭔지 알아?”하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막걸리에 콜라 섞은 거?”라고 대답하는 날 ‘너는 알리 없을 텐데 어떻게 알지?’라는 표정으로 뚫어지라 응시하던 동생.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막걸리는 마시지도 않으면서?” 하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뚫어져라 바라본다.
“막걸리에 사이다 타면 ‘막사’, 그럼 막콜은 콜라 타서. 아니야? 막걸리 안 먹는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우리 집 옆 텃밭을 경작하시는 아주머니가 맛난 막걸리를 주시겠다며, 막걸리에 콜라를 타 줬는데 너무 맛있었다는 말이었다. 이제부터 두부는 막걸리 마실 때 콜라를 타 마시겠지?
“여럿이 먹었으면 밤 호박 하우스에서 저녁 먹었겠네? 맛있었겠다.”
“아니 배추밭 옆 농로에서 트럭 라이트 켜고 먹었어. 분위기 좋더라.”
“길바닥에서 하우스 안 가고?”
“안 그래도 언니도 오라고 할머니랑 아주머니가 얘기하는데, 바빠 보여서 안 불렀어.”
“안 나가 보길 잘했네. 걱정돼서 나가보려 했는데.”
두부는 가끔 산책하러 가는 길에 할머니들이 밭일하고 계시면, 집에서 음료수나 과일을 들고나갔다. 그런 동생을 나도 따라 나가 밭일도 도와드리고 이야기 상대도 해드리며 동네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때가 되면 “인자 쪽파 심기야 긋다.”라며 쪽파 모종을 주셨고, “콩 심을 거제?”라며 콩도 챙겨 오셨고, “물 좀 그만 주소, 아따 풀만 나온당게.”라며 우리 집 텃밭도 걱정해 주셨다.
이번에 두부가 멋진 불빛 아래에 농로 맛집에서 밥까지 얻어먹고 배추 모종까지 받아왔다. 김치 담자고 배추를 사자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녀,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씩씩하게 텃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스틱 브로콜리와 깨를 심었던 자리를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배추를 심었다.
“두부야 배추가 크면 김치 담을까?”하고 슬쩍 물어보았다.
“그래.”라며 그녀가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 할머니들이 내 동생을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왕 배추도 심었으니 무와 당근 그리고 가을 상추도 심자는 말에도두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두부가 무와 당근, 상추씨를 사 왔다.
일주일이 넘도록 씨를 심지 못하고 있다.
이웃집에 호박을 따다 드리고, 가지를 챙겨드리며, 끝물인 쌈채 같은 채소를 따서 나눠드리는 소소한 일들이 하릴없이 조용한 우리의 시골 생활이지만 가끔은 바빠질 때도 있다.
계획했던 도시 나들이와 결혼식 참석 그리고 두부는 회사 일로 나는 수업 준비로 텃밭을 둘러보지 못했다. 게다가 비까지 세차게 퍼부었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쏟아붓기를 반복하고 있어 우린 하늘만 살펴보고 있었다.
부모님과 주말을 보내기 위해 연차를 쓴 두부가 서울로 출발하고 비가 멈추었다. 그 틈으로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모기를 피하고자 방역복을 입고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스위트 바질과 타이 바질을 심었던 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당근 씨를 심고, 오이 줄기를 걷어내고 상추씨를 뿌렸다. 쌈 채소가 있던 자리에 무씨도 잘 묻어 주었다.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해 쪽파를 심어주지 못하고 텃밭을 떠나야 했다. 난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처마 밑에 앉아, 세차게 떨어지는 빗물에덕지덕지 묻은 흙을 비벼 장화를 씻어냈다. 내리는 모양새로 보아 주말 내내 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