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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Sep 24. 2023

아직도 여행 중.

귀촌 이야기

‘여행’     

한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가방 하나 들고 친구와 후다닥 여행을 떠났었다.   

   

한 번은 경주에 들러 불국사와 분황사에서 참배하고 황남빵 한 봉지 사 들고 첨성대며 천마총, 대릉원 그리고 서출지까지 길고 긴 길을 걸으며 나의 벗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부산으로 출발해, 내호냉면 한 사발로 시작해 광안리 밤바다를 걷고,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에 소주도 한잔 걸쳤었다. 그때는 20대, 나름 챙겨간 블링블링한 짧은 미니 원피스에 굽 높은 하이힐로 한껏 멋을 내고, 그랜드 하얏트 호텔 라운지 바에서 칵테일 한잔 들고 우아하게 앉아도 있어 봤다.  

   

다음날, 여기까지 온 김에 돌산 갓을 사가야 한다며,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여수로 출발했었다. 당연히 오동도가 보이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홀짝홀짝 들이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추천해 준 맛집에서 게장도 먹고, 그 옆집에서 맛난 갓김치 3종 세트를 샀었다.    

 

거기에서 끝났냐고? 우린 지리산을 넘었다. 길이 그다지 좋지 않던 시절, 겨울이 막 지난봄이었지만 고불고불한 지산길은 추웠었다. 뱀사골 가는 길, 언덕 즈음에서 곶감을 파는 꼬부랑 할머니를 만났다. 처음엔 한 줄만 사 먹으려 했지만, 남아있던 4줄까지 몽땅 샀었다. 담을 봉투가 없었던 우린, 첫 슈퍼가 나올 때까지 곶감을 두 손으로 들고 갔던 기억도 난다.  

   

이왕 온 김에 갈 데까지 가 보자며, 우린 내장산 백양사에 들어섰다. 절에 들어가 삼배하고 절 구석구석을 배회하다 나와 눈에 띈 첫 식당에 들어갔다. 그때야 내비게이션도 없이 세로 길은 홀수, 가로길은 짝수라는 개념만으로 지도를 보며 돌아다닐 때라, 당연히 맛집 알려주는 기능이 있는 모바일도 없었다. 파전에 도토리묵이나 먹고 나오려 했지만,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2층 큰방을 내어준다는 말에 지금은 마시지 않는 막걸리도 서너 병 마시고, 몹시 뜨끈뜨끈했던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푹 잤었다. 된장국에 생선구이, 산나물 그리고 따뜻한 흰쌀밥이 올라간 아침상까지 챙겨주신 아주머니에게 곶감 한 줄을 드리고 우린 출발했다.   

  

어디로? 데이트 장소로 핫했던 채석강을 친구와 손잡고 거닐며 사진도 여러 장 찍고, 마지막 여행지인 전주로 향했었다. 지인의 찻집에 들어가며 인사하는 날 쥔장이 보더니 “너 집 나왔냐?”라는 말에 나와 친구는 웃음이 빵 터졌었다. 원래는 경주에서 2박 3일 정도 절에도 가고 쉬려 했지만, 돌고 돌아 찻집까지 오게 됐다는 나의 설명에 “부럽다.”라며 차 한 잔을 들이켰던 쥔장. “난 우리 왔다고 찻집 문 닫는 그대가 부럽구려.”라는 화답을 던졌다.


“마지막 저녁은 걸게 해야지. 나갑시다. 내가 쏘겠소.” 하며 찻집 정리를 마친 쥔장을 따라나섰다.     

‘막걸리 한 상’ 받아 들고, 초저녁에 시작한 이야기는 밤늦도록 계속됐지만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한 2차전, 찻집으로 다시 돌아가 전을 부쳐 한잔을 기울였다. 우린 세상 다 살아 본 사람들인 마냥,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험담하며 세상을 비난했었고, 지난 추억을 곱씹었었다. 난 우리 부모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얘기하던 우린 20대 중반, 철없던 나이였다.

그렇게 우린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20대 좋은 나이였었다.      

난 한번 여행을 떠나면 열흘 되고 어느 땐 한 달 동안,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리고 영국, 이태리, 호주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여행이 아닌 삶을 찾아 전전하며 30대와 40대를 부대꼈다.

그리고 40대 후반 난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고, 다시 여행하고 싶어다.

그렇게 찾은 산천에 놀러 왔다, 살게 된 ‘귀촌인’이 되었다.     

이제 난 50대가 됐다.     


5년째 눌러앉아있지만 아주 가끔, 난 끝나지 않은 여행길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어오고 가기 힘들어 오래 머무는 기분. 20대였더라면 어땠을까?          

친구들이 "요즘은 여행 안 가?"라고 물어보거나, "놀러 안 와?'라고 물어보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여행을 왔는데 또 어딜 가나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전에 동생이 “어디에서 살 때가 좋았냐?”라는 질문이 생각이 난다.     

“사는 건 익숙하고 편한 데가 좋은 거야. 사람의 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아? 여행은 좋지, 신선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 자유롭고, 일도 없고 짱이지. 그런데 사는 건 어디에 사나 똑같더라."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난 이 산천이 좋은 이유가 여행 온 기분으로 편하고 익숙한 여행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지인들이 내가 여행 온 산천으로 놀러 온다.

         

그리고 나의 여행의 동반자인 동생 두부, 길동이와 함께, ‘무슨 밥상을 차려 줄까?’ 고민하며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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