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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Sep 03. 2023

집밥 한 상이 뭐라고 마음을 주시네요.

귀촌 이야기


점심 약속 시간은 토요일 오후 1시.     


노랑집 아저씨와 여사님은 종종 만나는 사이이고 가끔 밥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 삼매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마음이 통하는 마을 친구입니다. 이 부부가 얼마 전 새로 사귄 ‘또하루’라 불리는 귀촌 부부를 소개해줬죠. “우리는 언제 집에 초대해 줄 거야?”라는 또하루 부부의 말에 초대는 했지만 무엇을 대접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사실, 굳이 초대를 안 해도 되는 사이이지만, 별생각 없이 고향 떠난 귀촌인끼리 소소한 이야기로 이웃 간의 정도 느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또하루 부부를 초대했어요.


속 편한 음식을 좋아하는 노랑집 부부에겐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을 준비했던 경험 때문에 메뉴 선정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하루 부부에 대한 데이터라곤 귀촌한 지 4년 됐다는 것뿐. 제가 이태리 요리하는 요리사라는 걸 아는 분이라 한식보다는 양식을 기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편안한 집밥을 해드리기로 했습니다.     


오시는 손님분들 나이가 60에서 70대이다 보니 건강한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음식으로 메뉴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메인은 바비큐 소스를 곁들인 등갈비 오븐구이와 봄에 채취한 죽순으로 고추장구이. 곁들이 나물류로 텃밭에서 갓 따온 호박과 가지를 선택. 건강을 위해 렌틸과 보리, 찹쌀, 수수, 완두콩, 귀리, 멥쌀이 들어간 잡곡밥과 채수로 국물을 낸 감잣국을 준비.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노랑집 여사님을 위해 두부·새우전, 호박전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한 해초 샐러드를 사이드메뉴로 정했습니다.     

  

당일 점심, 밖에서 손님들의 말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저나 동생이 나가봐야 했죠.

동생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저는 마무리 요리로 오븐에서 등갈비구이를 꺼내 바비큐 소스를 한 번 더 바르고 오븐에 다시 넣었습니다.

가니쉬로 필요한 허브도 잘라 올 겸, 손님맞이 인사를 위해 나갔죠. 항상 반가운 노랑님 부부와 아직은 어색하지만, 초대에 응해주신 또하루 부부와 정겨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동생이 볼 곳 없는 집이지만 우리가 사는 곳이라고 텃밭과 그동안 장만해 놓은 농기구며 집수리 기구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오신 손님들이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저와 동생에게 전했습니다.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네! 뭘 이렇게 차렸어요.”라는 또하루 여사님의 말에 부족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저의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죠.


“언니 노랑집 여사님이 도토리묵을 쒀오셨어.” 하며 제 손에 전해진 예쁘게 포장이 된 그릇을 받아 들고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떨렸어요.


“사진부터 찍고 밥을 먹어야지?”라는 말이 들리고, 상위에 차린 음식이라곤 집밥밖에 없는 식탁을 연신 핸드폰 메모리에 담아내는 셔터를 누르며 “항공 샷을 찍어야겠는데.”하며 의자 위에 올라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네요. “밥 하고 국이 올라가면 다시 찍어주세요.”라는 동생의 말에 정말 쑥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어요.      


모두 자리에 앉아 제가 오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먼저 드시기를 권하였지만, 모두 저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 “귀한 음식을 보니 마음이 설렙니다.”라는 노랑집 아저씨의 말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차리느라 얼마나 고생했어요?”

“아니요. 힘들지 않았습니다.”라는 제 대답에 “우리 와이프도 음식 준비하려면 새벽부터 일어나는데, 많이 힘들었지. 이런 밥은 3시간은 얘기하며 천천히 먹어야 해.”라며 노랑집 아저씨는 차린 음식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시는 모습으로 음식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셨습니다.


“이게 죽순이예요? 더덕구이 못지않네.” 하는 말에 봄에 학생들과 죽순 채취하는 이야기와 아이들 수업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등갈비가 부드럽네요.”라는 또하루 여사님의 말에 “이런 거 마트에도 팔아.”라고 말하며 저를 쳐다보는 여사님의 남편이 머뭇거리더니 “직접 하신 거예요? 힘드셨겠네.” 하며 다이어트도 잊으시고 맛있게 드셨습니다.

“여사님 등갈비 빼고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어요. 두부 전에 새우가 들어가고, 국도 채수로 끓인 거예요.”라고 더운 날씨에 묵을 쒀주신 노랑집 여사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권해 드렸습니다.


밥 두 그릇 뚝딱 비우시고, 두 손으로 갈비를 잡아 드시며, 차려진 음식은 골고루 맛을 봐야 한다던 손님들에게 제 마음이 닿았고 또 그들의 마음이 제게 전해졌습니다.      


따뜻한 중국식 홍차를 마시며 따뜻한 시골 생활 이야기하고, 신기한 노란 망고 수박을 한입씩 베어 물며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가꾸며 사 모은 도구를 자랑하고, 밝은 분홍빛 복숭아를 집어 들고 동네 주민들과 일어났던 재미난 해프닝에 깔깔대고, 그린그린한 포도를 하나 따서 잔디 깎는 기계 다루기, 루비색 포도를 입에 물고 건강하게 사는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마음과 마음이 전해진 밥상 하나에 전 전원생활을 같이 해줄 친구가 생겼고, 이 마을에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전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도시에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이 밥도 많이 먹었고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귀촌해서 사귄 분들과 먹는 밥이, 이야기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를 찾을 때까지 시골 생활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이러다 이 산천에서 평생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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