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Aug 29. 2023

면사무소와 동사무소의 차이.

귀촌 이야기

어쩌다 귀촌한 5년 차 귀촌인입니다.

     

동생이 우스갯소리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 살던 분이 도시로 이사해서 동사무소를 갔는데, 직원들이 수박을 썰어 먹고 있더랍니다. 민원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동네 주민들에게는 권하지도 않고 직원들만 먹고 있었다며 ‘지들만 먹더라니까!’라고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사무소 직원 측에선 황당하고, 그 민원인으로선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민원인이 시골에서 온 분이라는 걸 동사무소 측에서 알았다 해도 이해하기 불가능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민원인으로서는 생각이 다를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2만 5,593명(통계청 자료) 주민이 동사무소를 찾아 ‘니들만 수박 먹니?’한다면 압구정 동사무소는 재정난에 허덕일 수 있습니다. 반면 어느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면에 살았던 주민이 동사무소를 방문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서울, 압구정 10%도 안 되는 2,800여 명 정도 사는 면 소재지 주민이 면사무소를 방문해 ‘자네 입만 입이랑가?’라고 말하면 직원이 미안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이사를 온 제가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하신 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귀촌한 첫 주부터 도서관에 수업을 나가게 되고, 유난히 제 수업엔 공무원이 많았습니다. 그중 우리 마을 면사무소, 민원실에 근무하는 팀장과 직원분도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가끔 면사무소에 놀러 가게 됐습니다. 처음 주민신고를 갔을 때도 분위기가 도시 동사무소와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제 학생들 덕에 자주 왔다 갔다 하다 TV에서나 보던 전원일기 판 면사무소 풍경을 보게 됐었습니다.      

     

등본을 발부받기 위해 면사무소에 방문한 날, 제 학생이었던 민원실 팀장이 커피믹스를 싫어하는 저를 위해 차를 한잔 우리고 과자 한 접시를 내주었습니다.

그날따라 한가하던 민원실에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같이 차를 마시게 되었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바쁜게 빨리 띠쥬쇼이.”라며 종이쪽지 한 장을 민원실에 내민 아저씨가 ‘그 소문 들었소?’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그 옆에 앉아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서류를 발부해 들고 있던 직원이 말이 끝나길 기다리다 지쳐 아저씨에게 “바쁘시다면서요?”라는 말에 “내가 은제.”라고 아저씨가 아는 소문 이야기를 이어나가셨죠.


“내가 본께 . . .”라며 할머니가 차를 한잔 마시고 동네 이야기를 전해주면,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짜쓰까”라고 무릎을 '탁' 치는 걸 아저씨가 맞장구치셨습니다.

그러다 “아따 이 과자 맛있으요이 이름이 머다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신 아저씨가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오메 늦어붓네. 나 가요잉. 서류는 다 됐당가?”라면, ‘아 이제 끝났구나’라는 표정의 동사무소 직원이 “벌써 해부렀소.”하며 서류를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수고하쇼”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여있던 주민들이 동시에 일어나 썰물 빠지듯 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눈을 뱅글뱅글 돌리며 동네 주민들의 말을 듣던 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난 누구? 난 지금 어디?’하며 넋을 놓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 정신없죠이. 자주 놀러 오면 적응돼요.”라며 팀장님이 시원한 물 한잔을 내주시며 웃었습니다.

“팀장님 저만 저분들 이야기 못 알아들은 거죠?”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한참 걸릴걸!”이라는 말에 민원실 직원분들이 모두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여름 더위에 일하는 민원실 분들을 위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줄 요량으로 1,500ml 피도 유리병 가득 담긴 레몬청과 스파클링 워터 2병 그리고 얼음을 들고 갔었습니다.

저의 처음 생각은 두고두고 시원한 차를 만들어 먹으라고 큰 병을 들고 간 것인데, 집에 갈 땐 빈 병을 들고 나왔었습니다.  

   

시작은 작았습니다.

민원실에 계신 팀장님을 비롯해 3명의 직원분과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는데, 할머니 두 분이 오셨습니다.

물 잔에 한 잔씩 따라드리자 할머니들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수다를 시작하셨습니다.

“안 시고 다네잉.”이라고 말씀하시며 할머니 두 분이 우리를 바라보시기에 더 따라드렸습니다.      


옆 동네 이장님이 문을 엶과 동시에 할머님들이 “이거 한번 드셔보쇼이 맛있네.”라는 말에 이장님이 눈이 똥그래지면서 서류보다 레모네이드를 먼저 받아 드셨고, 민원실 막내 직원이 예쁜 글라스를 가져오더니 “면장님 가져다 드리려고요.”라며 한잔을 가져갔습니다.

뒤이어 옆 사무실 여직원 두 분이 오고, 그리고 또 오고, 그리고 또 오고 순식간에 누가 직원이고 민원인인지 모를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더니, 스파클링 워터는 2병이 아닌 여러 병으로 늘어나 있었고, 어느새 저는 커다란 대야 같은 곳에 에이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모자라는데 집에 가서 더 가져올까?” 전 비어버린 병에 탄산수를 넣어 남아있는 달달한 레몬즙까지 긁어 헹구며 물어봤습니다.

“한도 끝도 없어요. 빈 병을 봐야 끝나요. 인자 끝나겠네.”하며 팀장님이 제가 들고 있던 병을 받아 들더니 빈 병에 담긴 탄산수를 대야 같은 볼에 담아 마지막 에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선생님 면장님이 고맙다는데요.”

“아네~” 이번에도 정신없는 시간이 갔고, 성큼성큼 걸어온 면장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팀장님 면장님은 이장님보다 높아?”하고 말하는 저를 보고 모두 황당해했습니다. 사실 저는 공무원이 직업인 학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엔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면사무소 대빵이요.”라는 말에 전 얼마나 놀라고 창피했는지, 그때 일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주민 사랑방인 면사무소에서 수다도 같이 떨고, 직원들과 날씨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같이하는 마을 주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면사무소를 방문하면 직원들도 차를 끓여주기보다 캔 음료를 권하고, 그 음료마저도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넓적하고 뻥 뚫려있던 민원실도 파티션이 설치되어 답답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시골도 도시화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제가 시골에 온 지 두 해전부터, 우리 군에도 도시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면 소재지도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면사무소 근처에 유럽 스타일 빵집이 생겼고, 중국집과 슈퍼는 없어지고 편의점 두 곳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주민 사랑방은 그대로 있지만, 우리 마을 대로변에 생긴 커피숍만 다섯 개가 넘습니다. 점점 도시와 닮아가고 는 것 같지요.  

  

저만해도 집 근처에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손님들과 집에서 자주 모이기는 했지만, 이젠 읍에 가지 않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커피숍이 하나 둘 생기면서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저의 시골살이가, 논밭이 둘러싼 마을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뿐, 도시에서 살던 일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사 온 첫해부터, 우리 집을 대나무 숲이라 생각하고 찾아오던 지인이나 학생들이 함께 찻잔을 기울이며, 가는 시간도 잊은 채 수다를 떨었던 시간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시골에 사는 저도 도시 사무소에 가면 ‘니들만 입이니?’라고 말할까요?

이전 03화 텃세는 외지인이 아닌 외계인이 듣는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