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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6. 2023

텃세는 외지인이 아닌 외계인이 듣는 거야.

귀촌 이야기

텃세는 도시에도 있습니다. 시골에만 있는 전통 관습은 아니지요.


그런데 텃세는 뭘까요?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 또는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이라고 네이버에 나오고,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위세를 떨거나 괴롭힘.’이라고 다음에 나옵니다. 업신여기는 행동임이 분명합니다.      


저도 5년 전 귀촌한 귀촌인입니다.

많은 분께 텃세는 없었냐는 질문을 같은 처지에 놓인 귀농·귀촌인들에게도 들었었죠.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로 이사를 와, 일자리를 구하고 같은 직업을 가지신 분들에게 텃세인 것 같은 볼멘소리를 들었죠.

지금도 여전하고, 저와 같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귀촌하신 분들의 어려운 상황도 접하고 있습니다.

일과 관련된 문제야 앞으로 풀어나가고, 맞지 않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50년을 살아도 마을 분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평생을 외지인으로 살아야 하는 걸 아시나요? 50년이면 외지인이 아니고 외계인 취급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터를 잘 잡아야 해!’에 나온 옆집이 아닌 반대쪽 옆집 이야긴데요.


저와 동생처음엔 할머니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첫인상은 한겨울 까만 패딩이 발목까지 오는 옷에 까만 모자까지 쓰고, 우리를 노려보듯 쳐다보던 모습은 싸늘하고 어두웠습니다.

산책을 하시는 건지 우리 집과 우리 집 옆집을 관찰하시는 건지 자주 집 앞을 지나다니셨지요.

 

봄이 오고 패딩을 벗은 할머니와 모자에 가려있던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 인사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집에 놀러 오시면 차도 한잔 내드리고 옆집 새댁도 불러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 드렸어요.     


옆집 할머니 아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으니 거의 60년을 사셨습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이 집이 내 시부모님이 살던 집잉께 100년도 더 된 집이제”라고 저와 동생에게 말씀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고, 할머니마저 심장이 안 좋아 스텐트 시술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울증이 와서 동네 사람과 왕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죠. 그래도 우울증인 할머니를 시골 동네 분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이해가 안 갔지만, 그렇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야 집 앞으로 차가 잘 지나다니지 않아 좋았지만, 할머니는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런 할머니는 우리를 친구로 삼고 싶으셨나 봅니다. 허구한 날, 우리 집과 반대쪽 옆집을 예고도 없이 찾아와 “있는가?” 하며 우리 집 현관 문과 아직 신혼부부인 집 문을 벌컥 열어 댔고, 새신랑에게 심부름을 너무 시켜 피곤해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집에 있는 쌀, 침대 등 무거운 짐을 좀 옮겨 달라고 주문하거나, 또 하루는 차로 실어다 달라는 등 온갖 잡일을 다 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여기서 한 시간 정도에 있는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딸은 가까운 읍에 사는데도 일은 옆집 신랑과 우리를 시키는데,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뿐이면 다행이었게요. 그 할머니가 새벽,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아와 “있는가?”라는 말과 동시에 사람이 있든 없든 문손잡이를 잡아 흔들고, 마구 잡아당겨 열려고 하시는 통에 문손잡이가 고장나버려 고쳤고 자물쇠도 하나 더 달았습니다.

그래도 도시에 사는 아들이나 가까운 읍에 있는 딸이 찾아오지 않아, 외로워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잘해드렸었죠.

그런데 집안을 둘러보시고 “모자가 많네잉, 나 하나 주게.” “가방이 이쁘네잉 나 하나 주게.” 온 집을 훑어보고 만져보며 우기기도 하셨습니다. 어허 참! 그럴 땐 우리가 아주 난감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를 피하게 됐어요. 그래도 살랑살랑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쇳소리를 내는 시장바구니를 밀고 다니며 열심히 회관을 찾아가는 걸 보면 그래도 할머니들이랑 잘 지낸다고 생각했고, 가끔 산책길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맥주 한잔하시는 걸 보고 안심했습니다.      


저희가 전세살던 집을 인수하고 마을회관에 떡과 과일 사서 인사를 갔던 날이었어요.


그날은 전에 인사를 갔을 때와는 다르게 산책길에 만나던 할머니들도 계시고, 100세가 다 돼가는 왕 할머님부터 많은 할머니가 모여 계시는 사이에 옆집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이장에게 들었네, 집을 샀다고?”

“자네는 어디서 왔당가?”

“이 아가씨들 여서 산지는 꽤 됐제. 강아지랑 같이 다니더만”

“자네가 집에만 있는 언니제?”

“저 할머니가 젤로 나이가 많아야. 그 탈랜트 갸가 이 할마씨 손녀여.”

“할매 지금은 인천 산다 했으요?”

왕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갸 탈랜트 시킨다고 이사 간 게 언젠가 모르것네잉”


“갸 고등핵교 때 아니다요.”하고 옆집 할머니가 말을 거들자, 왕할머니가 “넌 외지인이 뭘 안다고 씨불인다냐. 너 갸 잘 모르제?”라며 옆집 할머니를 빤히 쩌다보다 고개를 돌립니다.

이 말에 입을 닫은 옆집 할머니 그리고 우린 허걱했습니다. 50년을 넘게 살았는데 외지인이라고? 이 정도로 마을 사람 취급 못 받는 건 외계인이었어요.


“야야 목포댁아 너는 알제? 우리 막내여. 60대” 회관에 모여있는 할머니 중 막내라는 얘기였습니다.

과일을 준비해 오던 목포댁 할머니가 옆집 할머니보다 어렸습니다. 그럼 옆집 할머니보다 이 마을에서 조금 살았다는 건데, 목포댁 할머니는 외지인이 아녔습니다.

“아따 어려서 이뻤제 지금도 안 이쁘요. 할마씨한테도 잘 허고.” 하는 목포댁 할머니를 바라보며 왕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네' 소리만 하던 우리는 할머니들에게 풀려나 집으로 오며 이 황당했던 대화를 나와 동생은 이어나갔습니다.

“언니 전에 우리 집 전주인하고 할머니 싸웠을 때 경찰도 오고 난리였잖아. 그때 동네 사람들 할머니 도와주러 한 명도 안 온 거 알아?”

시골이라는 동네는 마을 주민이 안 좋은 일로 곤욕을 치르면 우르르 몰려와 편들어주는 일이 상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귀촌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싸웠는데도요. 그렇지 않다는 건 문제가 많아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 후로 길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여그 배추 뽑아다 먹지, 왜 손도 안 댄디야.”

“열심히 농사지으신 건데 막 뽑아다 먹기엔 죄송해서요.”

“팔고 남은 건께 괜찮어. 저 할마씨는 멀쩡한 배추 뽑아다 김채 담거.”하며 옆집 할머니 집을 바라보았어요.


또 한 할머니는 “밤 호박 가져가랑께.”하며 밤 호박을 안겨주셨습니다.

“자꾸 얻어만 먹어서 죄송해서요,”

“요놈은 상품이 안 돼야. 니들도 멀 자꾸 가져오면서, 저 할마씨는 몰래 들어와 멀쩡한거 가져간당께.”라며 옆집 할머니 집을 가리켰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다닌 지가 꽤 오래됐습니다. 하긴 우리 집에 놀러 오신 할머니들도 옆집에 들르지 않고 가시는 걸 보면 안쓰럽지만, 우리도 할머니가 힘듭니다.     


우리가 등기 신고를 하고부터 마을 행사가 있으면 이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참석하고 얼굴이라도 보이려 노력하고, 음식도 나르며 마을 분들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장님에게서 보름 윷놀이 행사가 준비를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보름날 아침 일찍 마을회관에 도착했는데 부녀회장님과 이장님만 계시고 아무도 안 계셔서 걱정했습니다.


부녀회장님이 커피를 한 잔씩 타 주시며 “오메 일찍도 왔네이. 어제 준비 다 끝내 버렸어.”라며 아가씨들(제 나이 50에 아가씨 소리 듣는

특권을 누립니다.) 아침잠이 많아 일찍 올까 싶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어차피 온 김에 한분 한분 들어오시는 어르신들 반기고 커피도 타드리고 말벗도 돼드리며 하하 호호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윷놀이 행사가 시작이 되고, 우리는 상차림을 도와드리며 친밀하게 지내고 있던 귀촌한 노랑집 부부와 반갑게 인사도 했습니다.

윷놀이는 탈락했지만, 행운권 뽑기로 괭이도 타오고, 한 집에 한 개만 준다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두 개나 얻어왔습니다.


우리도 마을 사람이 된 기분이었지요.

옆집 할머니는 60년 가까이 동네에 살았어도 70살 생일에 같이 밥 먹어줄 동네 친구가 없어 술 자시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데, 우리는 언제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을까 싶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던 옆 동네 사는 지인이 “너들 동네 사람이 됐네. 긍께 일 도와 달라 너들 불렀지.”라고 하시더군요.


저희처럼 동네 분들과 잘 지내는 귀농·귀촌인들도 많습니다.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까요? 하지만 외계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텃세를 느끼고 있다면 나의 행동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brunch.co.kr/@ginayjchang/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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