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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4. 2023

귀촌, 터를 잘 잡아야 해!

귀촌이야기

우리 집 바로 옆집. 만두네 집이었습니다.   

   

30대 양봉하던 젊은 부부와 강아지 만두가 귀촌해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옆집과 우리 집이 이 촌락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을 거예요.

우린 매일 차를 같이 마시고 가끔 식사도 같이하며 살갑게 지냈죠.

나의 귀촌에 많은 힘이 되었던 만두네가, 양봉 일을 그만두고 시아버지 사업을 도우려 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간 만두네가 아쉬웠지만, 동생과 저는 새로 이사 올 분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까요.

옆집에 부산에서 귀촌한 60대 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아주머니와 귀농·귀촌 교육도 같이 다녔습니다.

가고 오는 길에 아주머니는 주로 시집살이와 아저씨 바람피운 이야기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하셨어요. 이분도 젊은 여자들을 피해 시골로 이사 오셨다는 비밀이야기를 비밀스럽지 않게 해 주셨죠.

참 귀촌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아주머니는 저희 마을로 이사오기 전, 다른 마을에서도 1년을 사셨다며 전 마을 사람들과 있었던 슬픈 사연을 서슴없이 말해줬습니다. 


이주민에게 받는 마을 공동회비가 비싸다. 저희 마을은 가구당 1년 회비 10만 원을 받는데 그쪽 마을은 기부금까지 100만 원을 요구했다는 것이었죠.

제가 귀촌하신 분들 불만사항을 많이 들어봤지만, 전세로 사는 사람에게 기부금을 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고, 기부금을 내지 않으면 마을에서 살지 못한다는 말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사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외출을 하면 '예쁘게 차리고 어딜가소?'라는 말이 싫었고, 밤늦게 들어오면 '싸게싸게 댕기소, 밤길 위험한께.'라는 말이 거슬렸다고 합니다.

저에겐 동네분들이 하는 인사 정도로 들렸는데, 아주머니에게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사를 오옆집 지인들이 자주 찾아왔어요. 대낮에 술판이 벌어지고, 주로 마당에서 식사를 하시던 두 분은 산책을 나오던 우리와 눈이 마주치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옆집 할머니 뒷담화를 시작하셨죠. 하여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 같아서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건 무슨 일일까요? 저희와 교류가 없어지자 반대쪽 옆집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더니 저희를 피하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옆집 할머니도 저를 피하시고요.

그러던 중, 하루는 동생이 씩씩거리며 들어오더니 “언니 저 아줌마가 미쳤나 봐. 자기 남편이언니가 바람났다고 나보고 언니 조심하래.” 그러면서 저 아주머니랑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난 그냥 아주머니가 아저씨 욕하는 이야기를 들어준 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치부를 알고 있는 내가 싫어서 그런가 보다며 동생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옆집 할머니가 나를 피하이유도 찾았습니다.     


남편을 너무 사랑하는 아주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키는 나보다 작고 삐쩍 마른 건 그렇다 쳐도, 서생원 은 아저씨 얼굴은 제 타입이 아니라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기 신랑을 소문에 당사자로 만들 수 있지?' 

전 그냥 웃어넘기고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할머니에게 더 깍듯이 인사했습니다.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갔던 동생이 또 뛰어 들어오더니 “언니. 언니, 핑클 할매 사인방이 옆집 아줌마하고 할머니 조심하래.”라는 말을 하며 길길이 화를 내는 동생에게 무슨 말이냐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동네 분들은 옆집 아주머니가 뜬소문을 내고 다녔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니까요.


결국 옆집 아주머니는 1년을 못 채우고 이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옆집 할머니는 다시 외로워지며, 우리와는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아주머니께는 미안하지만, 이사를 가주니 너무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옆집은 거의 반년 정도 비어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당에 이불 하나가 빨래 건조대에 널려, 비가 와도 걷지 않아 저와 동생은 궁금하고 걱정이 됐습니다.

화창한 어느 주말에 산책하러 나가던 우리는, 옆집 분들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우그려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서툰 낫질로 집 안팎으로 허리까지 자란 잡풀을 베고,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밝은 미소를 띠며 우리와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청주 근교에 사는 이 부부가 옆집을 샀다고 합니다.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과 산을 좋아하는 부인이 두륜산에 반해, 신랑과 상의도 없이 덜컥 집을 사버렸다네요.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별장처럼 쓰고 싶다는 꿈을 반짝반짝 빛을 내며 말하는 부인이 걱정됐습니다. 우리 집 구경을 하며 텃밭을 보더니, 부인이 우리도 이런 텃밭을 만들겠다며 남편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쉬더군요.   

  

갑자기 저희보고 자기 집 텃밭을 빌려줄 테니 작물을 심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저희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자 “시골에선 농사지을 땅이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부인이 철없어 보였습니다. 저희는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라고 말을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권하더군요.

만약 우리가 귀농했다 하더라도 3평짜리 텃밭으로 무슨 농사를 짓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풀을 베느라 힘들었을 부부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한 달인가 두 달이 지난 후 우리 집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나갔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서있었습니다.

그녀는 잘 계셨냐는 가벼운 인사 뒤로 된장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시더군요. 황당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에 ‘순창 재래식 된장’을 들고나갔습니다.

그 부인의 말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집 된장 없으세요? 시골에선 집된장 먹지 않나요? 좀 얻으러 왔는데.”라며 날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순창 재래식 된장’은 됐다며 쌩하고 습니다.    

 

아니 이런 예의 없는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내 동생은 서울 그리고 저는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공부도 대도시에서 마쳤습니다.

분명 우리도 얼마 안 된 귀촌인이라 말씀을 드렸고요.

청주는 우리가 살던 도시보다 작고 더군다나 청주 근교에서 오셨다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골에서 산다고 모두가 된장을 담는 건 아니에요'라 얘기를 못 해 생각할수록 분했습니다.

아니 시골에서 뼈를 묻고 산 사람에게도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기가 막히더군요.     


한 번은 옆집 부부의 시어머니가 동생을 찾아왔었나 봐요. “언니, 시어머니만 놓고 어딜 나갔는지, 시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몰라 우리 집에 찾아와서 돌봐드렸다니까.” 그리고 아들과 통화를 해 비밀번호를 알려줬는데도 할머니는 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동생이 직접 가서 열어주었다는 얘기를 하며 참참참을 여러 번 외쳤습니다. 다음날 고맙다는 얘기도 없이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갔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습니다. 옆집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구세요?"

"옆집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 이시죠?"

"부탁이 있어서요. 보일러가 고장 나서... "


보일러 수리공 전화번호가 궁금해서 그런가  하고

마지못해, CCTV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었더니 거나하게 한잔 걸친 한 남자분이 서 있었습니다. 옆집 부부 동생인데 보일러가 고장 났다며 장작을 빌려달라는 거예요.

제가 놀란 얼굴로 장작이 없다고 하자, 시골집에 왜 장작이 없는지 되묻는데 전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저나 아궁이도 없는 집에서 장작은 어찌 때려고 했는지. 앞으로 이 부부와 정을 주고받으며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제가 겪었던 해프닝은 지역민들이 격은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같이 작은 일입니다.

5년간 귀촌인의 측면에서 볼 때 귀농·귀촌 교육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귀농에 가장  부분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 소통에 필요한 교육이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귀촌인 입장에서, 인구수가 줄어가는 농촌엔 이주민 유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읍면 단위에서도 이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촌하신 분들이 여러 매체나 SNS에 올린 글들이나 신문 기사를 보면 참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처럼, 이왕 자연을 누리며 사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살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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