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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Aug 23. 2023

귀촌, 굴러들어 온 돌입니다.

귀촌이야기

저는 어쩌다 귀촌한 5년 차 귀촌인입니다.

    

귀촌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 시골살이를 결정하진 않았지만, 이왕 시골에 이사를 왔으니 산천이 궁금해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습니다.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많은 분을 만났지요.


전원생활을 결정한 계기도 다양합니다. 남편이 바람피워 노인네들만 사는 곳으로 왔다는 분, 도시에서는 안 되는 장사 아이템이 시골에서는 먹힐 것 같다는 분, 자유를 찾아오신 분, 정이 그리워 오신 분, 도시 근교 텃밭 농사에서 뒤늦게 적성을 발견해 오신 분, 식용곤충이 미래의 식량이 된다기에 배우러 왔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귀농·귀촌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정이 넘치고, 자유를 향한 갈망이나, 자연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 없었지만, 전 그냥 놀러 왔다 산천이 좋아 주저앉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5년 전 설 명절 뒤 찾아온 동생이 “두 달만 같이 있자.”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가방 하나 딸랑 들고 산천으로 내려왔었습니다.

먼저 귀촌해 결혼과 이혼으로 외로웠던 그녀를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20살부터 영국, 이태리, 호주 그리고 서울과 한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일을 했기에 ‘한 두어 달, 산천 살이 정도야,’ 하고 단순하게 생각었습니다.     


한 3주가 지났을까요? 동생이 다니던 도자기 공방에서 강사님과 수강생들 그리고 저와 동생이 차를 마시며 한창 이야기꽃을  피울 때입니다. 동생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한 장을 제게 내밀더군요.

‘도서관 강사 신청서’를 그녀가 제 손에 쥐여주고 “3달만 강의해 봐. 언니는 여기가 잘 맞아 보여.”하며 배시시 웃더군요.


한 달만 있다 갈 생각이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고 책도 보며 쉬고 있는, 제 모습이 편안하게 보였겠지요. 그리고 저녁마다, 을 같이 먹으며 사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동생은 다시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제가 산천에 더 있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공방에 모여있던 분들도 어서 읽어 보라는 듯 모두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청서를 쭉 읽고 있는 내내 여러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는 듯 모두 하던 작업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동생이 “언니 3달만 더 있다 가는 거야.” 하며 '한다고 말해'라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난 다시 신청서를 바라봤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넣어보지 뭐. 그런데 내일이 마감이야.”라고 말을 하자.

“그냥 한번 넣어봐요.”하고 선생님과 수강생들까지 거드는 바람에, 안 돼도 상관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청 엔터를 눌렀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도시로 돌아가면 그리 울 것 같은 사그락 대는 보리 소리를 들으며 강아지와 논둑 산책을 했었습니다.

그때, 손에 있던 휴대전화기가 부르르 떨리더니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떴습니다.

‘도서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3월부터 5월까지 선생님의 음식 인문학 강의가 개설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와 관장님께서 면담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기왕 이렇게 된 이상 한번 해볼까?’라며 전 겁도 없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산천에 살라는 운명적인 신호였나 봅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이 산천으로 이사를 오고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귀촌하고 동네 사람들과 생기는 갈등도 없고,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지 실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난 새로운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정도입니다.

오며 가며 인사하는 저와 동생에게 알은척해줘 고맙다며 할머니들이 칭찬해 주시고, 텃밭 채소도 나눠 먹으며 동네 분들과 소소하고 단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귀농·귀촌을 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골에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십니다. 그분들의 얘기는 특성화와 전문가적인 도시의 일 처리와 다르게 투박하고 전문적이지 않은 시골 특유의 일 처리로 겪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또는 일상생활의 차이, 즉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품앗이가 생활인 지역 분들과 남 일은 상관하지 않고 살다가 정을 찾아온 도시인이 한마을에 살면서 일어나는 우발사건이 종종 나는 일입니다. 

업무적인 차이는 이성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 부딪히며 헤쳐나가야 하지만, 우발적인 사건은 감정적인 부분을 조절한다는 것이 어려운가 봅니다.

그로 인해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죠.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교육이 있는 날, 때때로 귀농·귀촌에 성공하신 선배님들이 찾아와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을 분들과 가깝게 지내라, 마을 모임에는 참석을 해라, 손님들 불러 밤늦게까지 떠들고 고기 구워 먹지 말아라, 떠들썩한 행사가 있으면 동네 분들도 초대해 같이 즐기라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지키기가 어렵죠. 내가 왜 남 일에 신경을 써야 하냐고 말하는 귀농·귀촌인들이 꽤 있습니다.      


시골은 도시와 다르게, 동트기 전에 농사일과 축사를 돌보기 시작하는 분들, 그리고 나이 드신 어르신이 많아, 초저녁에 일과를 정리하고 휴식이 필요하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니 밤늦게까지 떠들면 업무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시골로 이사하면 분리수거부터 마을 규칙 등 생소하게 다가오는 일로 마을 분들에게 도움 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 일엔 뒷전인 귀농·귀촌인들이 대다수입니다.


시골집엔 대문을 잠그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어요. 동네 분들이 서로의 집을 편하게 여닫으며 가족처럼 왕래하죠. 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어르신들이 자주 찾아오거나, 새로 이사 온 이웃이 궁금해 집을 기웃거리면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힘들어하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오히려 동네 분들이 힘들게 한다고 타박합니다.


전 물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마을 분들에게 인사하고 70세도 젊은이라 듣는 마을 노인정에 찾아가  인사는 드렸나요? 새로 이사 온 이웃을 궁금해하는 동네분들에게 대문을 열고 집구경 할 시간은 줬습니까?

나의 빗장은 잠그고 너만 열라는 건 도둑놈 심보 같죠.


귀농·귀촌.

제가 알기론 IMF 이후에 도시에서 귀농·귀촌 붐이 불었다고 합니다. 외환 위기로 어려워진 살림을 정리해 귀향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오신 분들이 많았다네요.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 서서히 IMF를 이겨내며 귀농·귀촌 인구가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2010년 귀농·귀촌 붐이 다시 불기 시작했죠. 2022년 기준 귀농·귀촌인은 438,012명입니다.

전년 대비 7천여 명이 줄어들었습니다만, 제 주위를 둘러보면 시골살이에 적응하지 못해 돌아가는 분들도 있고, 정부 정책 지원으로 오는 사람대부분으로 예상치 못한 지원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생계를 위해 귀농을 하신 분들도 있지만, 아직까진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이 그리워 귀촌하신 분들이 많다고 전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시골의 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산책하는 저희를 보면 불러 세워 반가움을 표해주시고, 언제든 집에 들어오라고 자리를 내주십니다.

저희는 예고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동네 분에게 과일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못생긴 오이라도 하나 따서 드리지요.


저희는 동네 어르신께 인사 잘하고 마을회관에서 부르면 달려갑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은 젊은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고 매의 눈으로 우리 집을 지켜주는 CCTV가 돼주십니다.


특별히 더 바랄 것도, 더 줄 것도 없는 동네 사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대우받으려 귀농하고 귀촌한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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