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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5. 2024

동생이 오징어덮밥과 오징어파전을 해 준 이유

그럼 그렇지 이유 없는 화가 어딨어.

동생 두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언니, 허리는 어때?”

“어! 너 왜 일찍 왔어?”

“이 언니가 정신이 없네. 해가 길어져서 그런가? 나 퇴근하고 온 거야.”

“약 먹어도 그냥 그래.”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쓰느라 정신없던 나에게 그날이 찾아왔다. 허리가 저리고 빠질 것처럼 아파 앉은뱅이 밥상을 꺼내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이불을 싸매고 앉아 있는 나를 안 됐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에구구, 밥 먹어야지.”하고 무릎을 팔로 집고 구부정하게 일어나려는데 “그냥 앉아계셔 내가 해 줄게. 오징어덮밥 어때?”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오호! 오랜만에 두부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

     

한동안, 우울한 얼굴로 ‘혼자 있고 싶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단 말이야!’를 외치던 녀석이 걱정돼 서로 조심조심 살았는데. 아니 이 녀석이 설에 서울 본가 식구들을 보고 와서인지, 빨래와 청소로 깨끗해진 집에 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밝아졌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길동이 산책을 다녀와 밥을 하고 있다.   

  

“솥에 있는 밥은 언니가 데워 줄게.”

“언니, 나한테 알려줘 봐. 어떻게 하는지.”

뭐지 이 녀석.


“언니 여기 썰어 놓은 호박은 뭐야?”

“저녁 반찬으로 호박전 부치려고 했는데.”

“그럼 연신내 풍 오징어파전 부쳐줄게.”     

우리 두부가 회사 일로 바쁘고 정신이 없어 그렇지, 손쉽고 빠르게 요리를 잘한다.


시드니에 있을 때,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 주방에서 알바를 하던 녀석이다. 녀석이 속은 많이 썩였지만, 손도 빠르고 일머리가 좋아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직원이었다.   

  

타 다다닥 힘이 좋은 두부가 칼질하는 소리다. 칼과 도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냉장고가 연신 열렸다 닫혔다.

“언니, 이게 마늘이야? 요게 마늘이야?”

“이게 마늘, 요게 생강.”

“언니가 썰어 놓은 호박 써도 되지?”

“그럼.”     


뚝딱뚝딱 소리가 나고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탁'하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다.

아무리 손이 빠른 녀석이라도 이렇게 빨리 끝났다고?

치이이익 기름에 양파, 쪽파, 오징어가 들어간 전 반죽이 펼쳐지는 소리다. 그러더니 설탕을 살짝 뿌리고 튀김가루를 올려서 굽는다.


“두부야, 밥솥 불 꺼.”

“벌써 껐지.”

아니 저 녀석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언니가 밥 퍼 담을게.”

조그만 밥주걱으로 한번 반을 떠서 그릇에 담고 잠시 두부를 바라봤다.

그 위에 양배추, 호박, 양파, 당근이 들어간 볶은 오징어볶음을 담으려 봤는데 아주 크다. 아주 큰 오징어 조각과 건더기들이 건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너 개만 담아도 밥이 짜겠는데.”

“언니, 대충 담아. 대충 해서 먹자. 난 언니처럼 정성 들여서 하지 못해.”   

  

사실 두부는 라면 하나를 끓여 먹어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 걸 좋아했었다. 설거지가 냄비, 집게, 국자, 먹고 난 그릇까지 개수대에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두부가 만들어준 오징어덮밥과 오징어파전을 차려 놓고 앉았다.

역시 누군가 해주는 밥은 기분을 좋게 한다.

오징어파전을 한입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맛있네, 잘했네. 바삭하니 좋네.”하고 파전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봤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우리 동네에서는 요렇게 해 먹어."라며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수상하다.

“서울 집에서 길동이 미용한 거 보고 아무 말 안 해?”

“다음엔 털 밀고 오지 말래.”

“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우리 길동이, 저게 뭐니.”   

  

갑자기 두부가 오징어파전을 열심히 먹어대더니 멈춘다.

“사실은 말이야. 길동이 털에 벌레가 기어 다녔어...”

“뭐라고?”

“내가 잘 안 씻겨줘서 그랬나 봐.”

“그러니까 자주 목욕해야 한다니까. 안쪽까지 잘 말려주고 습하면 피부병이나 벌레 생길 수 있다니까. 그래서 없어졌어?”

“이거 봐. 이거 봐. 언니가 이렇게 혼낼까 봐. 말 안 했어.”     


그래 사람이 화를 내거나 우울할 땐 이유가 있는 거지. 이것이 지금까지 화내고 뚱해있던 이유였어!  

   

“그래서 이젠 벌레 없어? 아니면 잡아줘야 해?”

“박박 빌어서 괜찮아. 약도 바르고 있어.”

“그럼 저 벌겋게 달아오른 부분은 미용하다 다친 게 아니네. 벌레야?”

“응.”     

그럼 솔직히 말하고 저 쌓인 길동이 수건과 이불을 그때그때 빨아야 하지 않냐고 폭풍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의 입에 한과를 하나 집어넣는다.


방바닥을 사랑하는 두부가 이젠 부지런히 길동이를 돌보겠다고 선언하더니 세탁기에 길동이 이불을 넣고 돌렸다.

길동이 이불 함을 열었다. 남은 이불이 한 개도 없다. 여름 이불도 없다. 길동이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다시 나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언니, 내가 차 한 잔 끓일까?”

“이젠 잘 씻기고 빨래도 잘해줄 거지. 말 못 하는 짐승이 무슨 죄냐. 네 강아지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두부가 굳은 결심한 듯 길동이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음날 쌓여있던 길동이 이불과 수건, 외출복을 내가 빨았다.    

 

만약 두부가 방바닥과 멀어진다면 날씬한 몸매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방바닥을 어떻게 없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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