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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21. 2024

겨울 한철만 여는 간판 없는 굴구이 집

북평면 와룡 마을에 있습니다

잔디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굴구이 우짠가?”

“좋지요.”

이 겨울 마지막 굴구이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몸이 서둘러 움직였다.  

   

쓰건 글을 저장하고 재빨리 노트북을 전원을 누른 다음, 세수하고 이를 닦고 스킨로션 찍어 바르면 끝.

시간 없고 어차피 뜨거운 불 앞에서 먹을지도 모르니 화장은 패스.

몸에 냄새가 밸 수도 있으니 내일 빨아도 되는 옷. 쭈그려 앉아도 괜찮은 옷을 입고 나이 드신 노견 길동이 산책을 시킨 후 동생을 기다렸다.     


퇴근하고 돌아온 동생 차에 올라탔다.

“렛츠고.”

“언니, 나 화장실. 6시에 만나기로 했어. 벌써 가서 뭐 하려고?”

“아항, 오늘 토요일이지.”     


만남의 광장처럼 쓰는 공용 주차장에서 잔디 아저씨를 만났다.     

“올해 들어 처음 뵙네이. 손 좀 한번 잡읍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며 올 한 해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힘 있는 악수 하며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근데 우짜쓰까. 우리가 갈라고 혔던 식당은 문을 일찍 닫는다고 하네이. 먼 점심 장사만 하고 문 닫는가 모르것네”

“괜찮아요. 다른 데 가지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뭘 먹어도 좋지요.”

“난 굴 별로 안 좋아해서 괜찮아. 히히”

“내가 딴데 갈라고 전화해놨당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두부가 뒷좌석에 앉아, 몰래 아저씨를 흘겨봤다.


아저씨의 차에 타고 두부네 돼지농장 이야기, 내가 쓰는 글 이야기,  작년에 결혼한 아저씨 큰아들 내외 임신 이야기, 몇 달 묵혀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북평면에 들어섰다.

“이 길은 가봤는가?”

“전 처음이요.”

“저는 면허증 따고 여기서 운전 연습했어요. 여기가 북일면으로 가는 구도로죠?”

“두부는 아는갑네. 바다 옆으로 난 길이라 구불구불하제.”


우리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법한 조그맣게 굴구이라고 쓰여 있는 허술한 간판이 아닌 패널에 써진 글을 발견했다.

“이런데 식당이 있어요?”

“여가 겨울에 굴구이만 할거여.”     


농로를 따라 좁은 길을 돌고 돌아 요즘은 보지 못할 오래된 작은 배들이 드문드문 정박해 있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섰다.

“요즘도 저런 배를 타는 사람이 있네요.”

“양식장 가는 배.”     


조금 더 들어가서 바닷가 공터에 아저씨 차가 주차되고 두부와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완도대교가 보이고 커다란 비닐하우스와 조립식 패널로 지은 작업장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 앞에는 뱃일에 필요한 통발 어망이 쌓여있고 삐따닥하게 서 있는 배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식당 간판은 보이지 않고.


“저그여”하며 손으로 비닐하우스를 가리킨다.

“따라 오랑께. 식당 맞어, 와룡식당. 안 팔아묵어.”

아저씨가 커다란 비닐하우스로 성큼성큼 들어가더니 “아까 전화를 드렸는디.”라며 두리번거린다.

자리를 잡고 앉은 아저씨가 “얼릉 주쑈.”하며 주인아주머니를 재촉했다.     

“나 이런데 처음 와봐. 진짜 굴만 구워 먹네.”라며 두리번거리던 성질 급한 두부가 장갑을 가져온다.

“아가씨, 그 장갑은 오른손만 있는디. 내가 챙겨 줄랑게.”라며 아주머니가 젓가락과 장갑 그리고 굴 까는 칼을 가져오셨다.     


테이블에 불이 켜지고, 아주머니가 네모난 소쿠리에 굴을 담아와 철판 위에 얌전히 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일어나더니 “인주소.”하며 아주머니에게서 소쿠리를 받아 들고 철판 위에 가득 쏟고 뚜껑을 닫았다.     



“이거 먹고 일 년 내내 평안하소. 굴이 피를 맑게 해 준다네.”

“굴은 카사노바가 많이 먹었지. 몇 개를 먹었다고?”라며 두부가 날 쳐다본다.

“50개가량 먹었다고 하던데. 진짜인지는 모르지.”     


굴하면 카사노바, 카사노바하면 굴.

동양 음식 문화가 들어가기 전에는 해산물을 생으로 먹지 않았던 서양이지만 1700년대 사람인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즐겨 먹었다는 일화. 그리고 세기를 통틀어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리는 클레오파트라가 피부 미용을 위해 항상 즐겨 먹었다는 전설을 보면 굴만은 예외였던 것 같다.  

   

“그럼 우리가 아니라 아저씨에게 좋은 거죠.”라며 두부가 웃는다.

“클레오파트라도 있잖아. 좋은 건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다 좋은 거야.”

“그라제.”     


칼슘 함량이 우유와 버금갈 정도라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리지 않는가. 나도 우리 아이에게 굴밥에 굴국, 굴 떡국, 굴 채소 무침, 굴전, 굴튀김, 구운 굴, 찐 굴, 굴 물회, 굴 그라탕, 굴 토마토 파스타 등 가지가지 참 많이 먹였었다.

무기질과 비타민이 밝은 피부색과 탄력을 주고, 아연이 몸에 쌓인 납 성분을 배출시켜 몸을 깨끗하게 해 준다는 것. 간 기능을 향상하는 타우린은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나 술안주로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카사노바의 정력?

아연이 때문이라 한다. 아연은 세포, 생식 기능, 호르몬 활성, 면역력 등에 필요한 미량 무기질이라는데 여기에서 세포와 생식 기능 그리고 호르몬 활성이라는 단어에서 정력을 만들어 주는 특정 물질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익었것제?”

“안 돼요.”

“언니, 더 기다려야 해.”

“이 성질 급한 분들아! 익을 틈을 줘야지. 생굴을 먹던가.  한 이삼 분 지났냐? 좀만 더 기다려 너무 많이 넣어서 철판이 식었을 거야.”

아저씨와 두부는 반찬으로 나온 백김치를 “맛나네이.”하며 집어먹으며 눈은 굴이 들어있는 철판에서 떼지 못했다.


 뚜껑을 바라보던 아저씨가 날 슬쩍 보고, 뚜껑을 확 열어젖혔다. “익히면서 묵자고.”하며 커다란 굴을 집어 들고 칼로 껍데기를 열었다.     

9월에서 12월이 적기인 굴을 2월이 중순이나 된 시점에 아주 훌륭한 굴을 바라지는 않지만, 커다란 굴 껍데기를 까서 뽀얀 하니 큼직하고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나오면 환호성을 지르며 ‘아 뜨거, 뜨거.’ 쪼글쪼글해진 알맹이가 나오면 투덜거리며 한 소쿠리 반을 먹어댔다.   

  

“이모, 떡국 주세요.”

대미의 장식 굴 떡국, 집에서 짠 참기름인지 떨어뜨린 참기름이 퍼지면서 향이 연기 따라 코끝을 튕기고 한 숟가락에 진한 굴과 참기름의 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이번 겨울 마지막 굴 만찬을 소박하지만 게걸스럽게 장식하고 ‘배불러. 배불러.’를 노래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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