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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8. 2024

첫 서울 친구

서울

부모님과 돌아온 하숙집은 조용했다.


하숙집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시던 부모님은 당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동생들 걱정에 서둘러 내려가셨다.


방으로 내려와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나 혼자다.     


똑. 똑.

“진아, 방에 있나?”

하윤이 목소리였다.

문을 열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긴 파마머리에 드러난 커다란 링 귀고리한 대학생이 서 있었다.   

방안을 살짝 들여다보던 그녀는 문을 잡아당겨 들어오며 “부모님은 가셨어?” 인도 사람들이나 입을 법한 촘촘한 주름에 하늘거리는 바지를 펄럭거리며 들어왔다.


“응. 들어 올래?”

이미 들어온 하윤이가 자기 방처럼 편하게 침대에 앉아 가방에서 꺼낸 거울로 얼굴을 보고 있다.

“수는 몸만 풀고 온다켔다. 나도 수업 끝나자마자 온 거야.”라며 거울을 보며 검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지웠다 찍어냈다가 다시 바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퍼뜩 옷 갈아입자.” 책상 위에 올려놓은 시계를 보더니 “야 올 때 됐는데.”라며 날 바라본다.

멍하게 녀석을 바라보는 내게 “와?”라고 되려 물어보는 하윤.


“어딜 간다고?”

“화양동 먹자골목. 오늘 금요일이잖아. 참! 네 번호 알려줘 봐.”

“015000222”

“하숙집 뒷번호가 1234거든 이걸 누르면 집에 언제 오냐는 얘기고, 다음 번호가 연습실 끝나는 시간. 알겠지?”

도통 뭔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어 하윤이 삐삐만 쳐다보고 있는데, “해보믄 안다.”라며 나에게 건네주었던 삐삐를 가져간다.


“화실은 언제 끝나는데?”

“10시.”

“맞나. 우리도 금요일에는 안 만나. 주말에 돌아다니지. 주말에 화실 가나?”

“응. 토요일 오후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나 왔다. 많이 기다렸지. 그 가시나가 늦장을 부려서. 야는 왜 이러고 있어?”라며 우릴 바라보다 침대 옆에 놓인 쇼핑백을 보더니 “엄마가 옷 사줬어. 입어 라.”라며 쇼핑백에 든 청 원피스를 꺼낸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날 이 아이들의 심란함이 움직이게 만든다.


“이쁘네, 이거 입고 가자. 얼굴에 찍어 바르는 거 없나? 요거로 입술만 바르고 갈까?”라며 수가 책상 위에 올려진 화장품 가방에서 오렌지색 립스틱을 꺼낸다.

“야는 이 색 안 맞아. 요거 발라봐.”

거울을 바라보며 분홍색인지 빨간색인지 알 수 없는 색깔이 입술에 발랐다. 까무잡잡한 내 피부에 동동 떠 있는 붉은 분홍색이 우스워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도 웃기 시작한다.  

   

새로 산 로퍼를 신고 방을 빠져나왔다.

“일루 와 봐. 하윤아, 아줌마한테 우리 밥 먹고 들어간다고 얘기해.”

수가 내 손을 잡고 하숙집으로 위층으로 향하는 문이 아닌 반대쪽을 향해 걸었다. 잠겨있던 철문을 열었다.

옆집과 연결이 돼 있는 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왔다.

“이 동네 집은 비슷하게 생긴 집이 많아. 이 집처럼.”


수가 성큼성큼 걸어가 옆 건물에 보이는 문을 열었다.

“아저씨, 드래곤 볼 들어왔어요?”

“저녁에 다시 올래. 아직 안 가져오네.”

“네. 우리 먼저 주야 해요. 저번처럼 딴 아들 주면 안 돼요.”     


어느새 하윤이가 골목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하숙집이 있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에 섰다.

“요로 가면 건대. 저로 가면 큰길.”하며 수와 하윤이가 큰길로 몸을 틀었다.

조금 전까지도 몰랐는데 엄청나게 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가게도 많고 커피숍에 옷가게, 분식집, 액세서리, 무선호출기 판매점, 호프집, 주점, 버스정류장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에서 애들을 잃어버렸다간 하숙집을 못 찾을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왔다.  

   

멈추지 않고 수다를 떠는 수와 하윤이의 뒤를 따라 걷고 또 걸어 예쁘게 장식된 가게로 들어갔다.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여있고 예쁘게 차려입은 언니들과 오빠들이 많았다.

“뭐 마실래?”

“카푸치노.”

우리는 주문하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기분이 이상하지?”라고 말을 떼는 하윤이를 바라봤다.

“우리도 처음엔 그랬지. 그래도 난 하윤이가 먼저 와 있어서. 막막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친구 해 줄게.”

“나도 처음에 막막했어. 뭐 한다고 서울로 대학을 와 가. 지금은 수가 있으니까.”

“고마워.”


하윤이는 부모님을 설득해 서울예대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문대에 갈 거면 뭐 하러 서울로 가냐는 부모님의 말씀에 서운도 했지만 들어갈 학비며 생활비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했단다.

수는 세종대에 떨어지고 고민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친구였던 하윤이 덕에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도 니는 가까워 좋겠다. 2시간 걸리나?”

“응, 안 막히면 2시간 30분 정도.”

“맞나. 우린 갈 길이 멀어 자주 못 간다.”라며 하윤이가 침울한 얼굴로 삐삐만 만지작거렸다.

“이라지 말고 떡볶이 먹으러 갈까?”라는 수의 말에 모두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예쁜 집을 빠져나와 그리 멀지 않은 분식집으로 들어가 즉석 떡볶이를 시켰다.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수의 삐삐가 드르르륵 드르르륵 움직인다.

“하숙집인데, 오빠야들 인갑다. 아지매도 뭐라 안 하는데.”

“큰 오빠가 오늘 고기 꾸버 먹자고 했어?”
 “기억 안 나는데. 진아?”

“난 어제 무슨 말이 오갔는지도 모르겠어.”라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옥상에서 고기 먹는다고 했네. 아침에 본 은행 다닌다던 그 오빠.”하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일단 전화를 해보겠다며 수가 카운터로 갔다. 전화기를 들고 심각한 얼굴로 ‘맞나’만 연신 대답하더니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싸 갈까? 오빠 오는 중이란다.”라며 앉아서 떡볶이를 국물에 적셔 숟가락에 담아 국물까지 호로록 먹고 있다.

“그냥 먹고 갈까? 먹고 있겠지.”

그라자.”하더니 수가 순대를 시킨다.

“여기다 순대랑 양배추 넣고 볶아 먹으면 먹을 만할 거야. 무바.”

떡볶이 국물에 양배추를 넣고 꼬돌꼬돌 볶아 낸 순대를 수와 하윤이가 집어 호호거리며 맛있다는 손짓을 한다.      


난 내 친구들이 만들어준 순대 양배추볶음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 왜 어제와 맛이 다르지?

아이들이 젓가락을 입에 물고 웃으면서 날 바라본다.

"맛있지."

나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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