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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9. 2024

재미없는 이야기

대략 난감

첫 수업 글을 올리고 마우스를 잡은 채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사람들은 그런 얘기에 관심 없어. 시골 사는 애들이랑 지지리도 궁상맞게 요리하는 걸 누가 봐. 차라리 언니 친구들이 어떻게 뒷바라지해서 자식들 SKY를 보냈는지, 아니면 언니 아들처럼 키 크고 잘생긴 놈이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잘 커서 수석으로 대학 들어가고 장학금 받으며 스스로 세상 이겨나가는 얘기 같은 거 그런 걸, 써야지.”

동생이 옆에서 하는 얘기에 할 말이 없다.     


난다 긴다 하는 작가들이 쓰는 글도 잘될까 말 깐데, 그런 맹맹한 글을 누가 좋아해.”

그렇겠지. 아무 생각 없고 맹맹한 우리 아이들 얘기를 누가 좋아하겠어.     


“생각을 해봐. 부모님도 관심 없는 애들에게 누가 관심을 가져.”

그런가...     


개척교회 목사 아들 나범이 바르고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가슴속에 간직한 일탈을 묻고 산다. 항상 웃는 얼굴로 고운 말을 쓰는 아이의 일탈이라야 별것이 있겠냐마는 도시가 그리운 아이.

도시에서 살다가 어느 날, 나범인 날벼락을 맞았다. 사람도 많이 살지 않은 시골구석 교회 목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왔다. 그리고 만난 친구가 디엔이다.     


엄마 품이 필요한 나이에 조그만 누나 손을 잡고 매일 울던 디엔인 조부모님과 살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정이 심한 할아버지가 싫어 술이 가장 싫다는 아이.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너는 우리 집 장남이다.’라는 중압감에 어른이 되면 땅끝에서 제일 먼 강원도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항상 멍한 눈으로 ‘꿈이 뭐예요? 가져봐야 어차피 최저시급 받는 사람이 될 텐데 뭐 하러 열심히 살아요.’를 입에 달고 산다.  

    

래도는 고지식한 아버지의 불호령에 기를 펴고 산적이 없다. 생긴 건 상남자,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학교 밖 활동은 금물, 세상이 무서워 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 아버지 생각이다.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어머니의 언어는 배울 수가 없다고 했다.      


몇 년째 식구들과 밥을 먹지 않는다는 재범이. 할머니 나이가 아주 많고 아버지는 환갑이 넘었다는 이야기 외에 식구들 이야기는 전해하지 않는다. 재범이가 5살쯤 되던 해 고향으로 비행기 타고 간 엄마를 어른이 되면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 매달려 산다. 한겨울 두꺼운 후드로 버티고 ‘안 추워요.’라며 어깨를 움츠리고 다닌다. 핸드폰이 없는 녀석은 집에 있는 컴퓨터가 유일한 놀이기구. 게임을 하다 잠들고 자고 일어나면 조그만 방 책상 위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빠져 산다. 이 정도면 넌 핸드폰이 없는 게 낫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만약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공부를 너무 잘해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지만, 동생을 무시하는 누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버지와 사는 그리.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한국에 시집온 엄마, 억척스럽게 주방 일을 배워 식당을 차린 후 집에 잘 오지 않는다. 아이의 옷에선 역한 냄새가 나는 날도, 갈아입을 옷이 없어 연한 회색 옷이 쥐색이 될 때까지 입고 다닌 적도 있는 아이다. 외로워서인지 허전해서인지 음식 앞에선 이성을 잃고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첫 요리 수업을 마지막으로 전학을 간 양준이. 누나와 같이 밥을 해 먹어서인지 조그만 녀석이 칼을 잘 쓴다. 김치볶음밥이 특기인 양준이는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소멸 위기의 마을과 학교 살리기 사업)을 통해 식구들이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다. 부모님은 일자리가 부족한 시골에서 살기가 힘들었는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 전학 가요.’라는 문자에 정말 이럴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다듬고 ‘어디로?’라는 나의 질문에 ‘저 전학 가기 싫어요.’라는 답이 왔었다.     


와~ 구구절절 써놓은 윗글은 내가 봐도 동생 말처럼 구질구질, 지지리도 궁상맞은 스토리다.


게다가 공부나 잘해! 재범이 빼고는 숙제 안 하지 시험점수 50점만 받아도 ‘아이고 잘했네. 이번엔 웬일이야? 공부 좀 했어?’라는 말이 나오는 아이들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다고 같이 놀 친구도 없는 시골 동네에 사는 무뚝뚝한 아이들에게 무슨 굴곡 있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겠어. 삶이 지루한 아이들인데.     

거기다 대략 난감 글솜씨를 가진 선생이 쓴 스토리는 스릴이 있길 하나 위트도 빠지고 자기 연민에 빠져 우울한 글을 쓰고 있으니 동생이 쯧쯧쯧 혀를 내두를 만도 하지.     


“언니, 그만 생각하고 밥 먹으러 가자.”     

그래 밥 먹고,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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