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던 시간이 생각나던 날
봄이 가며 여름이 오기 전 옆집에 새로운 분들이 이사를 오셨다.
내가 출근하려 집 밖을 나서면 복도에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일명 할머니들이 걸어 다닐 때 끌고 다니는 할머니 유모차가 복도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 이사 왔는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 짜증을 내기보다 옆으로 치워드리기로 생각을 접었다. 그러면 혹시 내일부터는 한쪽으로 치워놓을지….
하여튼 복도에 아직 집안에 들어가지 못한 가재도구가 커다란 바구니와 이사 박스에 마구잡이로 놓여있다.
사용하는 물건인지 버리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유물 믹서기, 우물 옆에 걸려있을 것 같은 바가지, 색 바랜 오렌지색 낡은 양동이, 때가 타고 또 타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크림색 전화기, 복조리 같은 인테리어 소품 등 뒤져보지 않아 더는 무엇이 들어있지는 모르겠지만 소박한 살림살이였다.
아마도 새로 이사 온 분은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할머니 거나 노부부 같았다.
며칠이 지나도 할머니 유모차는 복도 가운데 떡하니 서 있었고, 커다란 바구니 하나가 들어가면 다른 박스 하나가 나왔으며, 끌고 다니는 장바구니까지 나타나 정리하며 복도를 나다녀야 하는 귀찮은 일이 생겼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안면도 없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치워달라 부탁하면 멋쩍어하실까 아님. 서운해하실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옆집을 찾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강하게 생긴 첫인상에 비해 소심하고, 낯가리는 편이라서 분명히 나 스스로 할머니를 절대 찾아가지 못해 포기하고 치워드리는 쪽으로 선택했었다.
어느 주말, 아파트 복도로 들어서는데 문이 열린 옆집에서 할머니가 "할매 안 나갈라요?"라는 큰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 두 분이 집 밖으로 나오셨다.
눈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려 애썼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지고 내려진 고개 아래로 보이는 멈춰있던 할머니들의 신발과 다리.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인사를 했다.
“옆집에 사는 갑네? 암도 안 사는 줄 알았드만.”
“네, 옆집 살아요.” 멋쩍게 웃으며 서있었다. 풍채 좋은 할머니와 날렵한 몸매에 할머니, 두 분이 복도를 가로막고 서있어 도망갈 틈이 없었다.
“귀찮았것소. 하도 조용혀서 암도 안 사는 줄 알고.”라더니 끌고 다니는 장바구니를 집 앞으로 치우시는 거였다.
“아니요.” 거짓말!
“제가 치울게요. 이리 주세요.”라며 장바구니를 번쩍 집어 들고 현관 앞 비어있는 공간으로 이동해 드렸었다.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들은 옆집에 아무도 안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옆에 옆집 할머니 집으로 찾아갔다.
“할머니, 할머니, 저의 집 옆에 새로 이사 오신 분 아세요?”
“안 그려도, 물어보더만 오늘 봤다고. 조용해서 암도 안 사는 줄 알았디야. 그려서 집이서 공부하고 있어 조용하다혔지.”
옆에 옆집 할머니가 보기엔 우리 집에 책이 많아, 내가 집에서 공부만 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신다.
아무튼 “할머니 혼자 사세요?”라고 물어보자.
“엄마랑 딸이랑 산당게. 하나는 엄마고, 하나는 딸.”
“할아버지는 없고?”
“둘이, 둘이 산당께. 안 그려도 불편했겠고만. 어떻게 살았디야?”
“그냥 치우면서 다녔지요.”
“묵은지랑 밥 먹고 갈랑가?”
“아니 할머니 귀찮아. 나 집에 가서 할 일도 있고. 그럼 갈게요.”
“밥 먹고 가지.”
그 후로 옆집 할머니와는 인사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옆집 엄마 할머니는 매일 복도에 나와 밖을 바라보고 앉아계신다.
이제야 알았다. 할머니 유모차가 왜 복도 가운데에 놓여있는지.
사실 처음엔 이분이 딸인 줄 알았어요. 두 분 중 키도 크고 풍채도 있으며 주름도 덜 있으셔 딸인 줄 알았는데, 작고 말랐으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분이 딸이라는 거다.
허리가 휘고, 걸음을 잘 못 걸으시는 풍채 좋은 어머님을 모시는 마르고 키가 작으며 주름이 많은 딸 할머니가 힘들어 보였다.
딸 할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강아지 산책시키고, 심심한지 아파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반복적으로 엄마에게 말을 거는 큰 소리가 열린 문으로 들려오고, 하루에 한 번씩 엄마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아래층에서 바람을 쐬어드린다.
그리고 딸할머니가 지나다 나와 마주치면 항상 말을 걸어준다. 별 말도 아닌데 말이 그리운 것 같은 느낌. 그러다 나와 같이 위층으로 올라오면 습관처럼 옆에 옆집 할머니 집 초인종을 눌러본다.
‘유모차가 없는 걸 보니, 안 계시는가 봐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아마 할머니도 알고 계셨다는 걸 문 앞에 조용히 서있는 딸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심심하면 노인정에 갈 만도 한데, 주변 할머니들이 권해도 저희 동 바로 앞에 있는 노인정에 가시지 않는다는 거다.
엄마 할머니는 아래층도 잘 내려오지 않으시고 집과 집 바로 앞 복도에 앉아만 계시기 때문이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딸 할머니와 너무 상반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저 나만의 생각일 뿐.
혼자라도 가시라 말씀드리고 싶지만, 괜한 오지랖은 두 분에게 안 좋을 것 같아서 패스.
오늘도 할머니들은 1층에 나와 앉아계셨다.
더운데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여쭤보려 생각했지만, 얼마 전 수박은 밤에 화장실 문제 때문에 잘 안 드신다 해서…, 그냥 지나쳐 올라가려고 했었다.
“할머니 아이스크림 드세요?” 이놈에 주둥이!
“이따 사러 갈라혀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전하고, ‘아이스크림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쏴아아아한 기운이 목덜미 뒤로 올라오기 시작하며, 후다닥 집으로 올라와, 현관문을 잽싸게 열고, 광속으로 냉동실 문을 열어젖혀 아이스크림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비비빅 두 개가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스크림을 들고 1층에 내려와 할머니들께 드렸다.
“아따 일부러 왔으요. 고맙네.”라며 웃는 엄마 할머니. 항상 웃음기 없이 밖만 바라보고 있어 마음이 먹먹했었는데, 고마웠다.
“오늘은 수퍼 안 가도 되것소.”라며 씩 웃는 딸 할머니가 “오메, 아이스크림 드쇼. 옆집 처자 알아보것소?”
“암만.”
갑자기 가벼워지는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조선호박과 두부로 찌개를 만들려 했는데, 한 그릇 떠서 할머니들 가져다 드려야겠다.
조선호박. 두부찌개
1. 조선호박을 씻어 큼직하게 썰어준다.
2. 두부를 호박 크기로 썰어준다.
3.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씻는다. 조선호박과 비슷한 크기로 썬다.
4. 대파를 손질해 숭덩숭덩 어슷하게 썬다.
5. 마늘과 생강을 다진다.
요리하기
- 냄비에 조선호박과 다진 마늘 2T와 생강 1t을 넣고 새우젓과 고춧가루 그리고 감칠맛을 위해 맛 간장 조금을 넣고 약한 불에서 볶아준다.
맛간장이 없을 땐 양파를 더 많이 넣거나 설탕을 약간 넣어 단맛을 내주어도 된다. 찌개니까.
(맛간장은 양조간장과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대파,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끓인 간장입니다.)
- 센 불로 올리고 물이나 육수를 넣어준다.
(이번 찌개에는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둔 냉 콩나물국을 국물을 넣었다.)
- 뚜껑을 덮고 센 불에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두부를 넣는다.
- 중. 약 불로 줄여 조선호박이 부들부들한 질감을 내도록 끓인다.
- 양파를 넣고 조금 더 끓여준다.
- 마지막으로 파를 넣고 살포시 익혀준다.
- 그릇에 담아낸다.
찌개 한 그릇을 들고 옆집으로 향했다.
옆집에 다다르기도 전에 열린 현관문으로 살짝 보이던 할머니들과 밥상이 보였다. 몸이 순간적으로 후진을 하였다.
가끔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가 각각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전해 드리지 못한 조선호박. 두부찌개를 식탁에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