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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Feb 12. 2023

프리랜서 일상

워라밸의 의미

워라밸 :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줄여 이르는 말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 (출처:우리말샘)


비교적 퇴근 시간에 눈치 압박이 없이 제때 퇴근할 수 있었던 회사를 다니며 나는 비교적 워라밸이 잘 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게 워라밸의 의미가 퇴근을 제 때 하느냐 집에 있는 저녁 시간이 충분한지로 해석했던 것 같다.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퇴근을 제 때 하느냐의 개념으로. 몸은 퇴근했지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은 퇴근하지 못한 상태로 나는 워라밸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내게 워커홀릭이라고 부를 때였다. 그래도 일이 좋았고 일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 정도의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늦게까지 일해도 피곤함보다 다음 날의 성과와 칭찬에 더 신나 자가발전하던 날들과 연말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며 으쓱해하던 날들, 해외를 돌아다니며 성공한 직장인 코스프레하던 날들을 지나, 매일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던 어느 하루였다. 여느 날처럼 함께 밥 먹는 멤버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학생 땡땡이 시절처럼 직장인도 땡땡이치고 싶은 날씨. 이때 시간이 훅하고 내게 말을 걸었다. 


'여유 있게 점심 먹고 싶다. 오후에 걷고 싶을 때 걷고 싶다. 네가(회사가) 정한 시간이 아닌 내가 정한 시간 속에서 살고 싶다! 한시까지 돌아가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나는 내 시간을 돈과 바꾼 것이구나.' 


'시간과 돈을 바꾼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바꾸고 싶다...' 


수많은 벗트그러나의 생각을 거쳐 세 달 뒤 나는 교환을 마쳤다. 

 

내가 바라던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던 쫓기는 듯한 회사와 집을 오가던 일상이 막상 내게 주어지니 시간의 무게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회사 시절은 의식할 때만 기분이 나쁠 뿐이지 의식 없이 회사의 시간 속에 나를 맡기면 끝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자 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무엇을 할까요라며 커서가 깜빡깜빡하는 것처럼. 내게 명령어를 기다리고 있는 데 막상 나는 이 막대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겁을 먹기 일쑤였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이것저것 손대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갔는데 막상 뭘 했는지 모르겠는 하루도 내 앞을 지나갔고 회사 다닐 때 그리 해보고 싶었던 아침에 뒷산 오르기, 세 시간씩 끝장나게 한강 걷기, 도서관 가서 늘어지게 책 보기, 더 중요한 걸 해야 한다며 뒤로 미루던 요리 배우기를 하며 뿌듯해하는 하루하루도 지나갔다. 원 없이 내리 걸었던 스페인의 한 달은 꿈같았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가방 가볍게 기차에 비행기에 올랐다. 왠지 모르게 위축되던 하루, 아무것도 하기 싫던 하루, 티브이와 쇼파만을 붙잡고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하루를 지나 일상 루틴을 만들어가며 프리랜서로서의 일감을 늘려가는 하루하루도 지나갔다.  


회사에서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던 이십 년의 습관은 명령어를 받아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시간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아니 시간과 어떻게 좋은 친구가 되어 같이 갈 수 있는 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떻게 쓰고 싶은 지를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나가고 있다. 프리랜서로서의 일도 안정적이 되면서 진정한 워라밸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고 있다. 퇴근을 제때 하는 삶을 워라밸로 생각했던 회사 시절을 거쳐 요즘 프리랜서로서 시간과 밀당을 해가면서 살다 보니 워라밸의 정의를 조금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몇 시까지 일하고 몇 시에 퇴근하는 삶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으로,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시간을 구분하며 머리를 쓸 시간과 몸을 움직일 시간, 그간 하지 않던 일을 해보며 나를 규정하던 틀 밖으로도 나가보며 시간. 이런 균형을 맞춰나가는 요즘, 나는 워라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한 때 유행하다 워라밸은 이제 지나간 키워드가 되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제야 워라밸이 차박차박 내 삶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반갑다, 워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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