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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Mar 18. 2024

누가 레인보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너?

일본종주 17일차 : 도쿄~요코하마

  언제까지나ㅡ사실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ㅡ도쿄에 있고 싶었지만, 슬슬 도쿄 아래로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 3일 동안 도쿄에서 쉬고 난 후 다시 시작하는 라이딩은, 마치 나의 일본 종주의 제2의 서막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위치상으로도 군마를 넘기 전까지는 동해안을 따라왔다가, 이제부터는 쭉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일본의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것이었기에 또 태평양에는 어떠한 풍경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아침 일찍 거리에는 유치원생들이 자주 보였다. 여행을 왔을 때에는 항상 관광지 등에만 아침에 머물러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풍경이었다. 유치원생들은 지도 교사의 인솔을 받으며 손을 들고 질서 있게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모두 정해져 있는 듯 주황색, 파란색 등의 알록달록한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너무 귀여웠다.



도심지라서 다양한 루트로 도쿄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도쿄의 대부분을 다 돌아봤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오다이바를 통해서 도쿄를 지나가고 싶었다. 바다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다이바에서 도쿄 연안을 바라보며 달리는 라이딩을 상상해 보았다. 낭만 가득한 라이딩... 그리고 오다이바의 지도를 보다 보면,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장소 이외에도 많은 곳들이 보여서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키요스미 쪽에서 다리를 가로질러 오다이바로 들어섰다. 약간 도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여러 다양한 건물이 모여 있는 도쿄보다는 뭔가 일률적으로 일본 특유의 차분한 색상을 띠는 고층 타워 맨션들이 모여서 높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쿄는 거리가 시끌벅적하지만 오다이바의 길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한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살기 좋은 비싼 동네라는 느낌이 느껴졌다.


이전에 가본 적이 없었던 토요스 공원에 도착했다. 관광객에게는 보통 추천하지 않아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는데, 근처에 복합 쇼핑몰들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현지인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토요스 공원에서 도쿄 쪽을 바라보자, 높은 도쿄의 마천루들이 바다를 끼고 전경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오다이바의 토요스 공원

꼭 한강 공원에 온 것만 같았다(오다이바는 강이 아니라 바다이지만…). 밤이 되어 레인보우 브릿지가 밝혀지면 야경이 더욱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왜 사람들은 다 오다이바 해변 공원만 찾아가지? 레인보우 브릿지의 야경이 유명해서? 토요스 공원에서 오히려 훨씬 더 한눈에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볼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토요스 공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대체로 없었지만, 그 덕분에 더욱 평화로운 오다이바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가끔 조깅을 하는 동네 주민인 듯한 사람이나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이 보이는 정도였다. 저 멀리 보이는 레인보우 브릿지와 함께, 도쿄 바다를 가로지르며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이 수요일 오전 시간에 일은 하지 않고 도쿄에서 저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경제적 자유는 이루고도 남은 사람들이겠지? 나도 언젠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이후에 오다이바 해변공원도 지나고, 여행으로 오다이바에 가 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 가서 봤을 후지 방송국, 유니콘 건담을 지나서… 지도에서 보이던 오다이바를 빠져나가 도쿄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 쪽으로 향했다.


오다이바의 아래에는 대부분 공장들과 무역 물류 관련 센터들이 위치해 있었다. 이래서 지도에서 오다이바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고, 매연과 먼지를 폴폴 내뿜는 화물 차량들만 지나다니는, '여긴 올 장소가 아닙니다'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는 이곳에 오자 슬슬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다리 앞에 당도하자, 나를 살갑게 반겨준 것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빨간 글씨였다. 한자를 읽지 못해도 누가 봐도 들어오지 말라는 건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표지판이었다. 어째 불안한 기운은 어떻게 틀리지를 않을까?


‘아, 어떡하지… 돌아가기 싫은데.’


생각에서 함께 쏟아져 나왔던 비속어는 생략하고, 이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데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자전거나 차량으로 길 찾기를 선택했을 때, 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코스가 나왔다. 아니야, 이렇게 몇 십 킬로는 절대 돌아가기 싫어. 그러던 와중 ‘도보’를 선택하자,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다리를 건너는 길 안내가 나왔는데, 바로 <레인보우 브릿지>를 걸어서 통과하라는 것이었다. 아니, 레인보우 브릿지를 걸어갈 수 있다고?


구글맵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반신반의하며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서 오다이바 해변공원을 지나 레인보우 브릿지 앞에 당도했다. 정말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자전거 역시 끌고 가는 한에서 들고 올라갈 수 있다고 안내문에 쓰여 있었다. 이렇게 길고 높은 다리를 도보로 걸어갈 수 있다니. 안전 때문인지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 낮에서 저녁까지 정해져 있었다.



어쨌든 레인보우 브릿지의 차도 아래로 쭉 이어진 도보길을 통해 1.7km의 거리를 자전거를 질질 끌며 걸어갔다. 차량들이 쌩 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리가 흔들거리곤 했는데,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넌다는 것 자체는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바다 한가운데를 붕 떠서 건너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은근히 당최 왜 걸어서 건너는지는 모르겠다만 다리를 도보로 건너던 사람들이 보였는데, 다들 하나같이 그냥 일상인 듯이 평온하게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심지어 러닝을 하는 분도 계셨다.


그렇게 겨우 오다이바의 바다를 두 다리로 건너서, 도쿄 쪽에 당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도쿄 시내에는 역시 생활 자전거의 나라 일본 답게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빨간색으로 포장된 자전거길이 아니라, 법에 맞게 차선 끝으로 자전거 주행 차로가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하지만 대부분 일본 사람들은 인도로 자전거를 탄다). 뭐, 차량들이 자전거를 잘 배려해 준다는 것도 너무 좋지만, 사실 불법주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시로 갓길에 세워둔 차량들이 워낙 많다 보니 자전거 주행선이 있더라도 주행선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오늘 목적지는 요코하마까지였다.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는 불과 거의 50km밖에 되지 않았다. 적은 거리를 타는 것이 아쉬웠지만, 요코하마도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였기에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웠다. 오다이바에서 어찌어찌 헤매기도 했지만, 워낙 도쿄에서의 거리가 짧은 거리여서 사이의 도시인 가와사키를 가로질러서 금방 해 질 녘이 되기도 전에 요코하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나와서 요코하마의 해변 공원을 걸었다. 오다이바와는 다르게 요코하마는 또 다른 해변의 낭만이 있었다. 도쿄보다는 뭔가 차분하고도 고즈넉한 평화로움이 존재했다. 유명한 아카렌가 창고, 관람차 등이 모여 있는 장소까지는 가지는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들르고 싶었었던 <요코하마 여객 터미널>에 찾아갔다.



요코하마 여객 터미널은 위가, 따지자면 옥상이 마치 공원처럼 설계가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꼭 배를 타려고 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많은 관광객들이 터미널 위의 데크를 유유히 산책하고 있었다. 아마 우연히 전공인 조경과 건축과 관련해서 주워들은 걸로 지도앱에 가고 싶은 곳으로 저장해두었지 싶다.


내가 마침 딱 도착한 때에, 터미널에 정박해 있던 크루즈가 출발을 하고 있었는데 크루즈 위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여객 터미널 위에 있던 사람들도 손을 다들 흔들어주는데 너무 그 장면이 아름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가와고에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떻게 딱 크루즈가 출발할 때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하고 다시금 어떤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다. 요코하마를 그냥 지나치는 계획을 세웠더라면, 혹은 아까 아카렌가 창고에 들렀더라면... 아름다운 요코하마의 해 질 녘을 감상하며 여객 터미널 위를 걸으며 했던 생각들이었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까? 오늘 너무 적게 탔으니 내일은 최대한 달리자고 생각했다. 가마쿠라를 지나서, 하코네 산을 넘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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