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17일 차 : 도쿄~요코하마 (61Km)
도쿄에서 쉬고 난 후 다시 시작하는 라이딩은 마치 종주의 제2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위치상으로도 군마를 넘기 전까지는 동해안을 따라왔는데, 이제부터는 쭉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일본의 남쪽을 향해 내려가는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다.
태평양에서는 어떠한 풍경이 펼쳐질까라는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도쿄에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정비를 마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3일 만에 다시 잡아보는 핸들. 평일 이른 아침의 도쿄 거리에는 등교 중인 유치원생들이 자주 보였다. 항상 관광지 등에만 머물렀기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도쿄의 풍경이었다. 아이들이 지도 교사의 인솔을 받으며 손을 들고 질서 있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한국 유치원생들과는 달리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것 같은 주황색, 파란색 등 알록달록한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도쿄는 길이 복잡해 다양한 루트로 통과할 수 있지만, 개중에서도 오다이바를 통해서 도쿄를 지나가고 싶었다. 오다이바는 도쿄만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낭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키요스미 쪽에서 다리를 가로질러 오다이바에 들어섰다. 오다이바는 보통의 도쿄와는 사뭇 거리의 분위기가 달랐다. 다양한 건물이 모여 있는 도쿄 시내보다, 일본 특유의 차분한 색상의 고층 타워 맨션들이 한데 모여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도쿄만 위를 가로지르는 레인보우 브릿지를 배경으로 웅장한 마천루들이 그리는 도쿄 상공 위의 스카이라인. 도쿄는 거리마다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지만 오다이바의 길은 대체로 한산했다. 한 마디로 살기 좋은 비싼 부자 동네라는 느낌이었다.
오다이바에 가 본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 봤을 후지 방송국, 유니콘 건담을 지나 지도에서 보이던 도쿄로 이어지는 다리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오다이바의 아래에는 대부분 공장들과 무역 물류 관련 센터들이 위치해 있었다. 행인도 전혀 보이지 않고 매연과 먼지를 폴폴 내뿜는 화물 차량들만 지나다니는, ‘여긴 민간인이 올 장소가 아닙니다’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는 이곳에 오자 슬슬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다리 앞에 당도하자 나를 살갑게 반겨준 것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빨간 글씨였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봐도 출입금지라는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째 불안한 기운은 틀리지를 않을까?
‘아, 어떡하지… 돌아가기 싫은데.’
어디까지 돌아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자 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아니야. 이렇게 몇십 킬로는 절대 돌아가기 싫어. 그러던 와중 이동 수단으로 도보를 선택하자, 그나마 가까운 다리를 건너는 경로가 안내되었다. 그 다리는 바로 레인보우 브릿지였다. 아니, 레인보우 브릿지를 도보로 지날 수 있다고?
구글 지도도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레인보우 브릿지 앞에 당도했다. 레인보우 브릿지에는 정말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자전거도 끌고 가는 한에서 들고 올라갈 수 있었고, 안전 때문인지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은 낮에서 저녁까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두 손으로 끌며 약 1.7킬로의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레인보우 브릿지를 도보로 건넌다는 것 자체는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바다 한가운데를 붕 떠서 건너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었다. 대형 차량이 쌩 하며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간혹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상인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고, 심지어 러닝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겨우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내려와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역시 생활 자전거의 나라인 일본 답게 도쿄는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었다. 한국은 차선과 별개로 특유의 빨간 블록의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일본은 차선 가장자리에 자전거 주행 차로가 직접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하지만 인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도쿄에는 불법주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시로 갓길에 세워둔 차량들이 워낙 많아 자전거 차로를 가리고 있어, 뒤편에서 오는 차량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타야 했다.
가와사키라는 도시를 지나 도쿄에서 불과 50킬로 떨어진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50킬로밖에 달리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페달질을 멈추기로 했다. 적은 거리를 탄 것은 아쉬웠지만, 요코하마는 아직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던 도시였기에 지나치기엔 아쉬워 이곳에 숙소를 잡았다.
체크인을 한 후 근처에 있던 요코하마의 해변공원을 향해 걸었다. 도쿄와 요코하마는 비슷한 대도시 같지만, 도쿄보다는 뭔가 차분하고도 고즈넉한 평화로움이 요코하마의 거리에서 느껴졌다. 이곳을 온 이유는 ‘요코하마 오산바시 여객 터미널’을 보러 온 것이었는데, ‘고래의 등(쿠지라노세나카, くじらのせなか)’라는 별명을 가진 이 터미널의 옥상은 물결이 치는 듯한 나무 데크와 잔디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마치 공원처럼 꼭 터미널 방문객이 아니더라도 데크 위를 산책할 수 있다.
마침 터미널의 옥상에 도착했을 때, 정박해 있던 크루즈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로 향하는 크루즈일까? 크루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갑판 위로 나와 다양한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터미널 위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답장이라도 하듯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나도 함께 크루즈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마치 가족처럼 한마음으로 행복한 크루즈 여행이 되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가와고에의 축제가 떠올랐다. 어떻게 딱 크루즈가 출발할 때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요코하마를 들르지 않고 지나쳤더라면, 가와고에를 지나쳐서 도쿄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심지어 아키타에서 다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크루즈가 출항하는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을까? 저물어가는 노을에 빨갛게 물들고 있던 코스모월드 관람차와 아카렌가 창고를 바라보며 했었던 생각들이었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까? 오늘 너무 적게 탔으니 내일은 최대한 달리자고 생각했다. 가마쿠라를 지나서, 하코네 산을 넘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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