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드디어 도쿄

일본종주 16일 차 : 가와고에~도쿄 (48Km)

by 루로우

토요일 가와고에의 아침은 오늘이 정말 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도쿄까지 남은 거리는 50킬로밖에 되지 않았기에, 축제를 구경한 다음 천천히 출발해도 여유로울 정도였다.


유명한 가와고에 스타벅스에서 태블릿을 펴고, 어제 대화하느라 쓰지 못했던 여행기를 마저 써 내려갔다. 글을 쓰는 데 정신이 팔렸다가 어느새 옆을 둘러보자 매장이 만석이었다. 모두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일까? 축제는 언제 시작하지? 하고 두리번거리던 때, 갑자기 입구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타벅스 입구에는 화려한 금장을 두른, 2층 석탑같이 생긴 거대한 수레가 북소리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수레를 호위하는 듯한 사람들이 있었고, 뒤편에는 휴대폰을 든 사람들이 마치 소독차를 따라다니는 아이처럼 쫄래쫄래 수레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이미 축제는 진행되고 있었다.

얼른 짐을 정리하고 대로로 나왔다. 불과 2시간 전의 한적했던 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수레뿐만 아닌 수많은 수레가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수많은 가게들에서 점원이 손님을 호객하고 있었다. 수레 양쪽의 앞잡이들이 거리를 통제하듯 길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이 수레에 붙어서 수레를 밀어 움직이고 있었다. 개중에는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건가? 아니면 시에서 돈을 주고 고용한 아르바이트일까?


아파트 2층 높이는 족히 될 법한 수레 위에는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위에는 가면을 쓴 사람이 연극 같은 것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와 함께 또 다른 한 사람이 옆에서 북을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한국의 판소리 같았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무녀복을 입고 춤을 출 때 나오던 음악이 떠올랐다.


자전거가 고장 나고, 꼬여버린 계획 속에 우연찮게 들렀던 작은 도시. 그런데 들른 날이 1년에 딱 한 번만 열린다는 유명한 대축제날이라니. 지난날 여유도 없이 여행 내내 투덜거리고 스트레스받았던 하루하루를 떠올렸다. 심지어 아키타에서 다치지 않았더라면, 혹은 어느 날 내가 20킬로라도 덜 탔더라면, 하코다테에서 쉬지 않고 빨리 출발했더라면… 이 모든 상황 중 하나라도 달라졌더라면 그냥 도쿄로 갔을지도 모른다. 우연 하나하나가 바로 이날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의미가 없는 순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거리는 더욱 혼잡해져만 갔다. 마치 도쿄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가와고에로 온 것만 같았다. 줄곧 지나간 곳이 죄다 시골이었으니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인파를 오랜만에 보자 복잡해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가와고에 축제는 정말 큰 축제였구나.


어쨌든 축제와 수레들의 행진은 항상 계속되고 있었고, 오후가 되어 슬 도쿄로 출발할 채비를 해야만 했다.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찾으러 가는데, 인파가 정말 지나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거리를 꽉 메우고 있어 이동할 수 조차 없었다. 알고 보니 앞에서 수레 3대 정도가 사거리에서 만나면서 벌어진 병목사태였다. 수레가 움직이기 위해선 사람들이 길을 터 줘야만 했고, 또 수레 자체를 호위하는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서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길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겨우 인파를 헤치고 나와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어제처럼 다시 아라카와 강의 둑길로 올라갔다. 한강의 자전거길처럼 아라카와 강의 둑길은 도쿄의 스미다 강까지 쭉 이어져 있기 때문에, 차도를 타지 않아도 둑길 한 길로만 가도 도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쿄로 가까워질수록 져지를 입고 본격적인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변에는 축구장이나 야구장 같은 여러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초등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많은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거나 교실을 다니는 친구들일까? 많은 학부모들이 앉을 수 있는 스탠드가 없는 대신 둑길 위에 캠핑 의자를 가져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둑길을 관람석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 할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시내에서 밀리는 차량과 신호에 멈추는 일 없이 도쿄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둑길 주변에 편의점을 비롯한 아무 시설이 없다는 것이었다. 편한 길이라서 50킬로를 너무 얕봤다. 먹을 것과 마실 것조차 준비하지 않았는데, 편의점에 가려면 둑길을 한참 빠져나가야만 해서 다시 돌아오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장장 40킬로라는 거리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꾸역꾸역 페달을 밟았다. 음수대를 발견하자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마실 수 있는 음용수인지도 모르겠지만 허겁지겁 마셔댔다. 저녁 5시가 될 무렵 드디어 둑길에서 빠져나와 도심지인 기타센주에 도착했다. 염원하던 도쿄에 도착했는데도 왜 감개무량하지 않을까? 도쿄면 뭔가 으리으리한 마천루들이 나를 반길 줄로만 알았는데, 도쿄가 워낙 넓다 보니 먼저 나를 반겼던 것은 도쿄 외곽의 주거지였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있는 아사쿠사에 가까워지자 그제야 점점 예전의 도쿄 여행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들이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쿄구나…. 우뚝 솟은 채 반짝거리고 있는, 도쿄의 랜드마크인 스카이트리가 오랜만에 나를 반겨주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이 지긋지긋한 라이딩을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이 정도면 딱 일본의 절반을 지난 걸까? 거리를 합산하자 예상했던 3,000킬로의 절반보다 많은 1,700킬로가 나왔다. 최북단에서 도쿄보다, 도쿄에서 최남단까지가 더 멀어 보이는데, 아무렴 어때. 나름 일본의 수도에 왔으니 이곳에 머무르는 만큼은 긴장을 풀고, 라이더의 사명을 뗀 한 명의 관광객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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