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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Mar 11. 2024

홋카이도에서 드디어 도쿄에 도착하다

일본종주 16일차 : 가와고에~도쿄

  토요일 가와고에의 아침은 오늘이 정말 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이제 도쿄까지 남은 거리는 50km밖에 되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출발을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스타벅스에 세워두고 축제를 구경한 뒤 오후에 도쿄로 출발할 생각으로 일단 오전 일찍 문을 여는 스타벅스 가와고에점에 들어갔다.


태블릿을 펴고 밀렸던 여행기를 써 내려갔다. 태블릿 화면에 코를 박은 채 글을 쓰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했는데, 어느새 옆을 둘러보자 10시쯤 거의 만석이 되어 있었다. 모두 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이겠지? 축제는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시작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걸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찰나에, 갑자기 입구 쪽에서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잽싸게 핸드폰을 들고 뛰쳐나갔다. 입구로 나오자, 화려한 금장을 두른 거대한 꼭 2층 석탑같이 생긴 수레가 연주하는 북소리와 함께 가게 앞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수레를 호위하는 듯한 사람들과 마치 옛날 소독차를 따라다니던 아이들처럼 관광객들이 수레를 쫄래쫄래 뒤쫓고 있었다. 이제 축제가 시작된 것일까? 돌아온 나는 글쓰기를 마치고 얼른 태블릿을 챙기고는 가방을 싸고 스타벅스를 나왔다.


조금 더 큰 거리로 나오자, 불과 2시간 전의 한적했던 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저 멀리 아까 보았던 수레보다 더 큰 수레가 인파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어느 골목이나 거리를 가도 지나다니는 수레 한 대쯤이 보였다. 수레가 지나가기 위해 양 쪽의 앞잡이가 거리를 통제하듯 길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이 수레의 양쪽에 붙어서 수레를 움직인다. 모두들 전통 일본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는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중에는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이 사람들, 전부 다 공무원은 아닌 것 같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건지 시에서 단기로 고용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인 건지 궁금했다.



지나가는 수레 위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연극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소리가 꼭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 미츠하가 무녀복을 입고 춤을 출 때 나오던 음악과 비슷했다. 아마도 일본의 민요나 판소리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자전거가 고장 나고, 꼬여버린 계획 속에서 우연찮게 들른 작은 도시에서, 1년에 딱 한 번만 열린다는 유명한 대축제날에 맞춰서 도착했다니. 지난날 여유도 없이 여행 내내 투덜거리고 스트레스받았던 하루하루가 떠올랐다. 심지어 내가 아키타에서 다치지 않았더라면, 혹은 어느 날 내가 20km라도 덜 탔더라면, 내가 하코다테에서 쉬지 않고 빨리 출발했더라면… 이 모든 상황 중 하나라도 달라졌더라면 이 축제에 오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도쿄에 갔을지도 모른다. 우연 하나하나가 바로 이 날을 만든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하루하루의 여러 우연들이 완전히 달라진 미래를 가져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꼭 영화 <어바웃 타임>이나 <나비효과>을 체감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서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의미가 없는 순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정말 사람이 많다고 느낀 뒤에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파는 거기서도 더욱더 늘어났다. 마치 도쿄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가와고에로 온 것만 같았다. 삿포로에서도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은 보지 못했는데, 줄곧 지나다닌 곳이 죄다 일본의 시골이었으니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인파를 너무 오랜만에 보자, 복잡해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정도로 정말 큰 축제였구나.


어쨌든 축제와 수레들의 행진은 항상 계속되고 있었고, 오후가 되자 슬 도쿄로 출발할 채비를 해야만 했다. 스타벅스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찾으러 가는데, 인파가 정말 지나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거리를 꽉 메우고 있어서 이동할 수 조차 없었다. 알고 보니 앞에서 수레 3대 정도가 사거리에서 만나면서 벌어진 병목사태였다. 수레가 움직이기 위해선 사람들이 길을 터 줘야만 했고, 또 수레 자체를 호위하는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서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길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겨우 사람들을 지나서 그렇게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출발할 수 있었다. 어제처럼 가와고에를 벗어나 다시 아라카와 강의 둑길로 올라갔다. 한국 자전거길처럼 둑길이 여기서부터 도쿄까지 쭉 이어져 있어서, 차도를 타지 않아도 둑길만 밟다 보면 도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쿄로 가까워질수록, 쫄쫄이를 입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라이딩하는 일본 시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대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변에는 축구장이나 야구장 같은 여러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초등학생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많은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거나 교실을 다니는 친구들일까? 학부모인 듯한 사람들도 주변에서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앉을 수 있는 스탠드가 없는 대신에, 둑길 위에서 캠핑 의자 등을 세워두고 경기를 다들 관람하고 있는 둑길을 경기장 관람석으로 활용하는 그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 하나, 웃음이 나왔다.



시내를 지나다니지 않고 도쿄까지 쭉 한 길만 가도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둑길 주변에는 전혀 뭔가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화장실도 점점 가고 싶은데, 화장실도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았다. 50km를 너무 얕보았다. 50km면 하루 내내 평균 라이딩 거리로 잡은 100km의 무려 절반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40km라는 거리 동안에 뱃속에 물을 포함해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은 채 꾸역꾸역 달렸다. 2시간이 지나 거의 탈진할 것 같은 차 저녁 5시가 될 무렵에 도쿄 기타센주 근처에 도착했다. 뭔가 염원하던 도쿄에 도착했는데도 왜 감개무량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도쿄면 뭔가 엄청난 높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할 줄로만 알았는데, 도쿄가 워낙 넓다 보니 먼저 나를 반겼던 것은 높은 빌딩들이 아닌 도쿄 외곽의 주거지였다. 그래서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도쿄 기타센주


어쨌든 도심지를 통과해 숙소가 있는 아사쿠사로 가까이 가자, 그제야 점점 이전 도쿄 여행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들이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쿄구나. 스미다 강변에 오자 우뚝 솟은 반짝거리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오랜만에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어제 사이타마에서도 꼭 작은 별처럼 빛나고 있던 스카이트리가 보였는데, 이쯤 되면 우스갯소리로 제주도에서도 보인다는 서울의 랜드마크인 롯데타워의 역할을 도쿄에서 스카이트리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전철을 타고 도쿄로 향하다가도, 스카이트리가 보이면 드디어 도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도 사실상 계획한 종주의 절반 지점인 도쿄에 도착했으니,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샷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으레 사람들이 도쿄 역에서 찍으니 도쿄 역에 가야겠다,라고 했지만 아사쿠사에서 도쿄 역을 가려면 조금 더 라이딩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오후 5시라 금방이라도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이었다. 짧은 50km를 탔지만, 바로 코 앞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몸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나는 사진은 내일 찍자고 결정하고 금방 포기해 버렸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라이딩은 당분간 며칠동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났다. 꿈의 도시 도쿄. 이번에도 결국은 여행이지만 다음에는 꼭 살러 와야지.


다음 날 도쿄역 앞에서 찍었던 인증샷



벌써 1700km인데, 아무래도 끝까지 가기 전에 3000km를 넘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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