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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서재 Mar 25. 2022

그래서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너와 내가 정체가 되는 곳

"그래서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서재 장소를 물색하며 함께 했던 복덕방 아저씨의 질문이었다. 계약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나 보다. 다 이해한 듯 하셨는데, 계약과 동시에 물으신다. 서점도 아니라고 하고, 도서관도 아니라고 하고, 카페도 아니라고 하고, 책방도 아니라고 하고. 평상시에 잘 쓰지도 않는 공간 언어, 서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정체(?)를 물을 때, 나 조차도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시작부터 정의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았다. 그럴듯한 말은 필요없다. 그냥 이도 저도 아닌 공간이다.


사람들은 정의된 공간을 가고 싶어한다. 이미 이야기가 있는 곳,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대에, 정의되지 않는 곳은 매력적이지 않다. 애매모호함, 불안정감, 시간이 아깝다.


어쩌면 이곳은 참 이기적인 공간이지 싶다. 주인이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으니까. 이게 좋으면 와보라는 식이니까. 책도, 커피도, 시간도, 비용도.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 내가 좋은 것이 좋다. 싫으면 싫은 거다. 그러나 그 이기심은 한 인간의 고유함이기도 하다. 내가 좋다는데, 그렇게 태어났다는데, 그래서 좀 욕심 낸다는데, 누가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결국 사람과 사람은, 서로의 이기심 어딘가에서 만나는 것일 테니까.


나란 사람과 너란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 그 하나로 서로가 연결되는 곳이면 되지 않을까? 이야기가 있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나는 곳이 되면 안될까? 목적을 이루는 곳이 아닌, 새로운 목적을 만나는 곳이면 어떨까?


어느 공간도 주인은 없다. 내가 정하는 것도, 네가 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정한다. 정체가 나고 너고, 사람이다. 


이곳을 찾아간 한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기셨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주인도 모르는 것 같다."


맞다. 그런 곳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를 찾는 분들이 만들어가는 곳,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겨나는 곳.


오늘도 내일도, 이곳은 이기적인 또 한사람이 찾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책을 읽으러,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을 것이다. 자기가 원하면 커피도 마실 것이며,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가 원하는대로 그들을 환대할 것이다. 이기적으로. 그리고 따뜻하게.


그렇게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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