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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29. 2020

4년제 대학



우리 4년제 나와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한 손에 펜을 들고 서류 뭉치들을 기계 같은 눈으로 대조하던 이 대리가 옆에서 조소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자조에는 당연 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나는 별 다른 군소리 없이 같이 웃었다.



수 차례 거대한 수정을 거친 보고서에 오탈자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된 사람은 막내 신입사원이었다. 똑똑해서 차라리 불행했던 그의 발언에, 부장님은 금세 아연실색했다.



  - 부장님, 여기 좀 이상한 거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보고서는 한 부가 아니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할 서류였다. 대체 어느 시점의 수정본부터 그 파리 같은 오탈자가 밉상 맞게 그 자리에 전세를 내고 있었는지 알아내야만 모든 보고서들의 완전무결이 증명되는 것이었다. 오탈자가 혹시 다른 복사본에도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바로 이 대리와 내가 지난 3일 간 함께 수행했던 과업이었다. 막내는 공교롭게도 그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반차를 쓰고 나갔다. 



4년제니까 그나마 여기서 받아주지.

 나는 그렇게 들릴듯 말듯 의미 한 줄 찾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 대리의 조소에는 틀린 말이 없다.

 나름 전공 과목과 일치하는 직장을 구했지만, 실무는 대학에서 배우는 것과는 무척 달랐다.

물론 배움과 앎이 목적인 대학이 취업 기관은 아니기에 이것이 일치될 필요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부득이 대학을 나와야만 이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연유는 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도 길을 잃은 셈이었다.




 걸출한 자기계발서보다 엄마의 잔소리를 한권으로 엮는 편이 낫다.


 이렇게 따지자니 우리 엄마는 거진 박사님에 준했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하신 엄마는 '육아'라는 대학에서 이론과 실제 중 '실제'에 매달리셨다.

말 안듣는 연년생의 아들 두 명을 키워내기 위해 온 몸으로 부딪히셨던 그 분의 실무는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어떤 나부랭이와 직장에서 수행한 어떤 업무에 견주어도 레벨이 높았다.


차라리 그것이 대학이고, 질적 연구였으며, 논문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나의 자기 계발에 관심이 없다.


 일거리,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될 일거리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근본 목표인 회사에서 당신의 자기 계발은 회사가 신경써야 할 목록의 가장 마지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제 대학을 나왔다면,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주어지지 않는지 불평할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에 무엇이 있을지, 또 그 일을 과연 회사 안에서만 찾을 것인지. 고민은 사실 내 속에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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