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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03. 2023

귀걸이로 통한 사이

아파트 관리인 마담 M 이야기 1화

우리 아파트 관리인 마담 M. 그녀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파리 16구 아파트에 살 때도 아파트 관리인은 포르투갈 남성이었고, 이름이 M으로 시작했다. 마담 M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2020년 11월, 뇌이쉬르센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당시 이삿짐센터 사람들과 그녀는 언쟁이 있었다. 이사를 하다 보면 짐을 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분진이 나고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 물건을 끌다 보면 바닥이 조금 더러워지기도 한다. 그녀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사할 때 이쪽으로는 다니면 안 된다고 화를 냈다. 한창 마스크 착용이 의무라서 그녀의 큰 두 눈만 빼꼼 보였다.


속으로 '관리인 아줌마 되게 무섭군. 조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무슬림이었다. 이삿짐센터 리더인 M은 내게 "저 아줌마는 인종차별주의자예요."라고 씩씩대며 말했다. 아랍인과 포르투갈 인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몸 좋은 아랍인 장정들 여럿 앞에서도 한 명의 포르투갈 중년 여성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기세가 대단했다.이 나라는 워낙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한데 모여 사니 서로 간의 인종 차별도 심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관리인들을 많이 접했을 터이다. 아랍인 리더는 이곳 아파트 관리인들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장미란 작가의 <파리의 여자들>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살고있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마담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챕터로 깊이 있게 풀어냈는데,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인은 대부분 포르투갈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렇고 보니 주변에 포르투갈 출신 아파트 관리인이 많다. 이들은 포르투갈 이민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아파트 관리인 일을 하면서 그렇게 연합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마담 M과는 오다가다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나를 경계하나 싶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에 우리 가족만 동양인이다. 아무래도 팬데믹의 발원지가 중국이다 보니 동양인이 한창 안 좋은 이미지였을 때이기도 했다.


이곳 프랑스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파트 관리인들에게 돈을 주는 풍습이 있다. 나도 주변에서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정해진 액수는 없지만 월세의 5~10% 라고 들었다. 10% 로면 꽤나 큰 금액이다. 살짝 이웃 L에게 물어보니 그 정도까지 주는 것은 아닌 듯했다. 월세가 워낙 비싸다 보니 10%면 엄청난 액수다. 각자 사정에 맞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주면 된다. 물론 큰 금액을 주면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심지어 안 주는 집들도 꽤 있다. 그래서 자기 형편 따라 하면 된다. 우리는 프랑스에 살면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관리인에게 소정의 현금과 작은 선물을 드렸다. 그러면 아무래도 택배라던지 신경 써서 물건을 받아준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그렇다. 뭐라도 해드리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가게 된다. 관리인들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아파트 로비에 자주 나타나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청소하며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드러낸다.  


아파트 청소부 흑인 아저씨 R에게도 작지만 현금과 선물을 드렸다. 그에게 소량의 현급과 선물을 드렸을 때 환하게 웃던 미소와 허리를 연신 굽히며 감사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연신 고맙다고 해서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이웃의 작은 호의에 이렇게나 감사하고, 고마워하다니. 그때 마음이 참 뭉클했다. 가족은 있는지, 어떻게 사시는지 잘 모르지만 사람의 관심과 호의가 많이 그리우신 듯 했다. 그만큼 작은 것에도 고마워 하셨다. 그 후, R은 우리를 볼 때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다. 우리도 그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그에게 말을 붙이는 이웃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파트주민들은 그저 자기 일에 바쁠 뿐이다. R은 아파트 계단과 정원을 청소하고, 꽃과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주민들이 가득 채워놓은 쓰레기 통을 비운다. R은 자신의 차에 뭘 가득 넣고 다닌다. 그는 어디에 살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저 인사를 하고 "잘 지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안부를 묻는 것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아무도 그의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개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물어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R도 사실 그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반갑게 인사하고, 생사를 확인하는 사이로 남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에게 선물을 준 뒤부터 한결 가까워졌고,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한다.


마담 M은 우편물을 챙겨서 각 집 문 앞에 배달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세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녀는 정원을 가꾸고, 택배를 받아주는 일을 한다. 아파트 로비만 R 대신 그녀가 청소한다. 그녀의 사무실이 있는데 사무실 안 쪽이 자신의 집이다. 한 번도 들어가서 본 적은 없다. 작지만 잘 꾸며놓고 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곳에서는 혼자 살며, 남편은 다른 동네에 있는 자기 집에서 산다. 주말이면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간다. 그렇게 2021년,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이 되자 마스크도 완전히 벗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만 봤을 때는 다소 무서워 보였는데 얼굴을 보니 한결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녀도 내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인사를 했다.


올해 초부터 그녀는 내게 "모니카, 당신은 멋쟁이야. 매일 옷을 멋지게 입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해서 나만 보면 "오늘도 멋지네요. 모니카 당신은 늘 새로운 옷을 입으며, 패셔너블해요."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나는 "감사해요! 마담 M, 당신도 너무 멋져요!"라고 답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패셔너블한 사람은 아니다. 어떤 날은 그 말을 또 들을 까봐 민망해서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지나갈 때도 있었다. 사실 그녀의 이러한 칭찬에 적지 않게 놀랬다. 그녀가 이런 성향의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와 가까워지고 싶은 것일까?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원래 이런 사람인데 그동안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말을 안 한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만나면 잠깐 멈춰 서서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바캉스는 어디로 가는지 등 가벼운 주제에 대해 짧게 대화했다. 그런 던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을 해서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녀는 내 귀걸이를 보더니, "귀걸이가 너무 예뻐요. 특이한데 어떤 것인지 봐도 될까요?"라고 했다. 두 개를 겹쳐서 착용하는 스타일인데, 한 개는 앞에서 밀어 넣고, 다른 한 개는 귓불 뒤에서 밀어 넣어 두 겹으로 완성되는 스타일이다. "아, 이거요? 보세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나는 손으로 귀걸이 빼서 직접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특이하다며 신기해했다. "귀걸이 좋아하세요?" 그녀는 "좋아하죠. 귀걸이를 안 하면 마치 옷을 안 입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문장이 꽤나 인상적으로 내 마음에 다가왔다. '귀걸이를 하지 않으면 옷을 안 입은 것과 같다.'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마담 M! 너무 멋진 말인데요!"


나는 귀걸이를 무척 좋아한다. 귀걸이를 안 하면 패션의 완성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일 귀걸이를 착용한다. 집에 있을 때도 착용한다. 귀걸이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이다. 출산을 하고 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보면 자신을 가꾸기가 힘들다. 어디 나가서 나를 보여줄 것도 아니라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고, 신경을 쓰기도 힘들다. 매일 아기 기저귀 갈고, 수유하고, 이유식 만드는 일상 속에서 화장이 무슨 소용 있으며, 옷을 잘 챙겨 입는 게 무슨 필요가 있으랴. 피부 관리도 힘들고, 나를 가꾸는 일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런데 귀걸이라는 아이템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손쉽고 빠르게 착용할 수 있었다. 목걸이는 혼자서 착용하기 힘들고, 아기가 잡아 챌 수 있다. 반지도 육아할 때는 할 수 없다. 귀걸이도 링이나 볼드한 것은 아기가 잡아챌 수 있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귀에 딱 붙는 것을 착용하면 괜찮다. 지금은 사이즈가 큰 것도 즐겨 착용한다. 귀걸이 하나 착용했을 뿐이데 사람이 한결 나아 보이기도 하고, 뭔가 꾸민 듯 보이기도 하고, 기분도 한결 좋아진다. 사람이 생동감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은 뷰티 아이템이다. 한창 육아로 정신없을 때 푸석한 피부 때문에 거울도 보기 싫었는데, 그나마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시선이 귀걸이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한마디로 육아를 하면서 귀걸이 마니아가 되었다. 나처럼 귀걸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우리는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 후, 언제 기회가 되면 그녀에게 귀걸이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여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그때 그녀가 칭찬한 두 개를 겹쳐 착용하는 스타일의 귀걸이를 발견했다. 그녀는 평소에 진주 귀걸이를 자주 착용했다. 진주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진주가 박혀있고, 꽃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앞과 뒤에서 동시에 착용하는 귀걸이였다. 게다가 두 가지 타입으로 착용할 수 있는 귀걸이였다. 아래로 내려도 되고, 위로 올려도 되는 특이한 귀걸이였다. 마담 M에게 딱이었다. 바캉스를 보내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9월 둘째 주까지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남성이 그녀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에 물었다. "마담 M은 언제 와요?" 9월 중순쯤에 온다고 했다. 오며 가며 그녀가 돌아왔는지 사무실 문 안을 슬쩍슬쩍 매일 같이 확인했다.


모델 착용컷과 마담 M이 실제 착용한 모습. 초상권으로 얼굴을 공개할 순 없지만 그녀는 활짝 웃고 있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으로 오는데 그녀가 물걸레를 들고 아파트 로비를 청소하고 있다. "마담 M! 돌아왔군요!" 그녀는 "모니카! 왔어요. 반가워요!"라고 했다. 포르투갈에 있다가 어제 왔다고 했다. 바캉스를 꽤 오래 보냈다. 포르투갈에서 무엇을 했는지,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집에서 귀걸이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녀는 귀걸이를 보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나는 착용하는 법을 알려주며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의 귀에 껴주었다. 그녀는 귀걸이가 너무 예쁘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 후, 내가 준 귀걸이를 착용한 그녀 모습을 아직 보진 못했다. 계속 쓰던 것만 착용하고 있었다. “오늘 착용한 이 귀걸이도 예쁘네요." 했더니, "이것은 그냥 싸구려예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내 짐작대로 소중하게 아껴 쓰려는 것 같았다. 엄청 비싼 것도 아닌데, 그냥 막 써도 되는데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착용하고 싶을 때, 착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녀는 오늘도 반짝이는 귀걸이를 한 채, 뇌이쉬르센의 한 아파트 곳곳을 열심히 물 걸레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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