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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마네 Oct 26. 2024

우리 집 쿠마

선물이 오다

  어둠이 낮을 둘러친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한다. 아직 집에는 아무도 없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쿠마 때문이다. 쿠마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반려견이다. 그는 어느 날 우리에게 불쑥 온 게 아니다.

  월넛 칼라의 거실마루는 작고 어둡다. 여기저기 늘어진 전선들은 피복이 군데군데 벗겨진 채 뒹굴고 있다. 쿠마의 이빨이 나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것마다 갉아 놓기 때문이다. 어리고 에너지 많은 잭 럿셀 종인 쿠마는 장난감도 거의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물고 뜯어 마루는 온통 파편이다. 혼자서 종일 좁은 오피스텔 안에 갇혀 있다 보니, 대소변도 누는 자리가 따로 없다. 마음 안에 갇힌 채 마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이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쿠마이다. 작고 *올망진 쿠마는 사람을 잘 따른다. 보호자는 큰 딸이다. 주인 없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답답하고 외로웠음이리라. 찾아오는 사람마다 반기며 쫓아다닌다. 종종거리며 종일 좁은 마루를 돌아다녔을 것 같아 측은함이 들었다. 마음껏 놀아줘야 할 보호자인 딸은 학교가 끝나야만 집에 돌아온다. 잠시 돌봐 줄 뿐 같이 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무거운 현관문안의 쿠마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상상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둘이 살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으리라. 6월이면 딸아이가 집을 비우는 방학이었다. 쿠마는 다른 집에 맡겨진 채 누나를 기다렸으리라.

  쿠마처럼 외로웠던 날을 떠올린다. 타국생활이 힘겨울 때는 강아지를 부여안고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쿠마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까닥 돌리며 까만 눈을 굴린다. 울고 있는 나를 머리로 치 받으며 가슴으로 파고든다. 주인을 향한 몸짓이 사랑스럽다. 따뜻한 쿠마의 체온이 느껴지며 스르르 눈이 감긴다.

  삶의 여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쿠마의 보호자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첫 주인은 유학생이었다. 잠시 한국에 다니러 간다며 큰딸에게 맡겨 놓은 채 돌아오지 않았다. 두 번째인 큰 딸은 직장 문제로 중동으로 가게 되어 쿠마는 내게 왔다. 큰애 집에 오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힌지라 나를 기억한다. 나를 보고 기뻐 가슴에 안긴다. ‘누울 자리 보며 다리를 뻗는다’ 하지 않던가.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줄 알았음인가. 반가움에 강아지 특유의 소리를 냈다. 14시간의 시간차를 건너뛰고 쿠마는 한국으로 왔다.

  너를 만나 행복하다. 아침이면 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생명체이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잘 잤어?”

  쿠마 공간의 문을 연다. 쿠마의 공간은 우리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산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이다. 둘 만이 인사하는 방법으로 쿠마와 같이 코를 같이 비빈다. 아침이면 쿠마가 하는 스트레칭 자세를 나도 따라 한다. 앞다리를 길게 뻗고 허리를 땅에 닿을 듯 말 듯 펴서 몸을 늘인다. 피트니스에서는 고양이 자세라 하지만, 나는 강아지 자세라 하고 싶다. 본능에서 오는 것일까. 아침마다 하는 규칙은 누가 가르쳤을까. 날마다 일어나는 즉시 몸을 늘이며 온몸을 푼다. 나도 같이 따라 하다 보니 내 몸도 시원하다.  

  성견이 되어가며 젊잖아지고 늠름하다. 물어뜯던 물건도 “안 돼” 하면 멈춘다. 주인의 눈치도 살 필 줄 알며 말도 간혹 알아듣는다. 또한 반복적인 소리로 자신의 말을 내게 한다. 특히 간식을 먹고 싶을 때는 ‘잉잉’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몸짓으로 간식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며 ‘어서 따라오세요’라고 하며 내 눈과 마주치며 달려간다.

  사람 좋아하던 놈이 낯가림이 심하다. 더운 여름날 아파트 1층 마루에서 놀다가 젊은 아가씨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쿠마와 숨바꼭질하며 내가 숨어 버렸다. 숨어 있는 나를 찾기 위해 후각으로 지나가던 그들의 다리에 코를 들이댔으리라. 그들의 오해는 강아지가 물려고 하는 줄 알고 놀라서 발길질을 호되게 했다. 주인인 내게도 욕을 하며 따졌다. 그즈음은 애완견에  대해서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짐승 좋아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는 것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로 쿠마는 낯선 사람들과는 경계심으로 담을 쌓았다.

  우리 집에도 후유증이 왔다. 쿠마가 온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강아지를 위해서 연락 없이 집에 오는 것을 사절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반려견과 사람들의 소통의 통과의례는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집에서 기세가 당당한 강아지가 밖에 나가면 두려워한다.

  ‘낯선 사람은 들이지 못합니다.’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으르렁댄다. 내 얼굴을 흘끔거리며 앙칼지게 짖어 댄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서면 그야말로 ‘깨갱’이다.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쿠마와 함께 현관문밖 1층 로비에서부터 맞이한다. 쿠마는 냄새로 사람을 스캔해서 맞아들인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집에서는 강아지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의 통과의례이다. 체온이 따뜻한 강아지이다. 마음을 열면 따뜻하게 사람을 맞이한다. 이제 노견이 되어가는 쿠마와 오늘도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며 반려견도 지혜가 늘어가는 것일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이해하려 애를 쓴다  눈도 마주친다. 이만한 친구가 어디 있을까. 내게 집중하는 그는 마음을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이다. 쿠마로 인해 웃는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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