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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Sep 25. 2022

택시 기사님이 집을 구해주다니_제주도 집구하기

신니의 제주살이 7

입도를 앞두고 엄마와 집을 알아보러 왔을 때 일이다. 우선 제주에서 집을 구하려면 ‘신구간’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 하겠지만 옛날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라 아직도 이 섬에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문화라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제주는 1만 8천 신들의 섬이다. 각종 신화가 넘쳐나고 현대인들이 미신이라 여기는 민간신앙이 아직도 뿌리 깊다. 여느 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일터로 삼는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 두려움, 겸손함 등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 신들이 1년에 한 번, 다 같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 있는데, 이때를 ‘신구간’이라 한다. 신구간은 대한 닷새 뒤부터 입춘 사흘 전까지의 기간을 말하는데, 육지의 ‘손 없는 날’처럼 이때 대규모 이사, 집수리, 분가 등이 이루어진다.


제주 사는 선배와 한 달 살기 숙소 사장님에게 ’신구간 때문에 집 구하려면 빨리 구해야 할 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예사로 여겼다. 내가 서울에서 ‘오일장’, ‘제사모‘ 등을 통해서 매물을 보았을 때는 신구간이라 매물이 매일 쏟아졌기 때문에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엄마랑 신구간이 딱 끝나고 집을 구하러 왔는데.. 방문하는 부동산마다 마치 밥 떨어진 식당처럼 ’아.. 어쩌죠.. 방이 없는데..‘ 하며 손님인 나를 반기지 못하고 난감해했다. 모두 하나같이 ’이제 신구간이 끝나서..‘라고 하는데 엄마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풍습이고 요즘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후보지 중 하나였던 외도 쪽으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집 구하러 오셨나 봐요.‘ 엄마와 나는 넋두리를 조금 했고 기사님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외도 쪽은 비행기가 내리는 동네라 좀 시끄러워요~ 우리 동네가 참 좋은데~’ 하셨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기사님은 마을 회장님이었고, 딱 봐도 그 마을의 해결사(홍반장 같은) 이신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그럼 그 동네로 갑시다’ 하며 이런 즉흥적 상황에 몸을 맡겼다. 물론 그 동네도 후보지 중 한 곳이었기에!


미리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즉흥적인 걸 좋아하는 내가 어찌 마음이 딱 맞아서 택시를 돌리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예상하지 않은 상황이 너무 재미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랬던 거고 엄마는 그동안 집 구하는 것을 놓고 기도를 엄청 해서 택시 기사님 만난 걸 ‘인도하심’이라 느꼈다고 한다. ㅋㅋ


이도동에 도착한 택시는 어느 부동산 앞에 세워졌고 엄마와 나는 기대하면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도 마찬가지. 내가 지내고자 했던 1.5룸 방은 없고, 심지어 원룸도 없다는 것.. 허망하게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서있을 때 기사님이 들어오셨다. ‘예? 방이 없어요? 음 그럼 있어봐요~’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시고는 ‘어~ ㅇㅇ아~ 너네 집 2층에 그 아가씨 살던 방 비었댔지? 거 비밀번호 뭐야?’ 하고는 우리를 다시 택시에 태우셨다. 어리둥절한 엄마와 나는 얼떨결에 택시기사님이 이끄는 대로 집을 보러 갔고,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날 수 있었다.


‘집이 마음에 들면 계약 바로 하고 가시죠~ 계약서 들고 오라고 할게!’ 하하.. 이렇게 후다닥후다닥 진행되는 게 맞나.. 생각할 새도 없이 일이 착착 진행됐다. 10분 후에 집주인이 계약서를 들고 오셔서 계약서를 쓰는데 내가 ‘부동산 안 끼고 작성해요~?’ 했더니 ‘내가 집주인인데?’ 하면서 황당해하셨다. 긴가민가하면서 계약서를 쓰고 엄마랑 저녁 식사를 했는데 엄마도 나도 어리둥절하면서도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이사를 마치고 (아직 차가 없어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신기하게도 그 기사님이 배차가 되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차에 올라타며 ‘덕분에 이사 잘했어요~ 이 집 구해주셨잖아요~!’ 했더니 허허하며 반겨주셨다. 뭔가 든든한 이웃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주인분들은 은퇴 후 부동산중개업을 하시는 분들이셨다. 하하(그것도 모르고 부동산 안 끼고 계약하냐고 물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친구들에게 집 구한 이야기를 해주면 모두 신기해한다. 부동산에도 안 나와있는 집을 택시기사님의 전화 한 통으로 구하다니! 그리고 계획적인 엄마와 즉흥적인 내가 어찌 마음이 맞아서 택시를 돌렸는지!


제주 사람들은 알음알음 집도 사고, 차도 산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네.. 제주도는 여러모로 신기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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