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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07. 2021

여름방학

하계휴가 중 마주친 여름방학적 기분

  원 드링크 프리 쿠폰을 위해 왕복 버스비 2900원(경기도 버스 왜 이리 비싸?)을 쓰는 건 미련해 보인다. 안 사면 100% 할인이니까. 버스비라도 아껴볼까 했지만 새 양산도 오전 10시의 더위를 막지 못했다. 그나저나 나는 크로플이 먹고 싶었다. 달고 빠삭한 크로플! 탑승 6분 만에 버스에서 내리니 카페는 오픈 30분 전이었다. 하릴없이 주변 거리를 걸었다. 도시재생사업이란 명목 하에 재개발 공사가 코앞이었다. '그간 감사합니다' 인사를 붙인 빈 상점과 마지막 파격 할인이 써 붙은 형광 색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거기다 대대적인 휴가철. 거리는 인적 하나 없었다.


  배가 고팠다. 햇볕을 피하고 싶었다. 조금 걸어 안쪽 골목으로 들어왔다. 지역 이름이 붙은 백 년이 넘은 초등학교가 고개 위에 우뚝 위치하고 그를 중심으로 문방구나 분식집 같은 작은 가게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우선 근처에 유명한 분식집이 있어 거기로 향했다. 말도 안 되는 저렴한 현금가와 급식소 개수대 같은 곳에서 식용수를 받아 마셔야 하는 맛집. 주말이면 꼼짝없이 웨이팅을 해야 하는 곳에서 줄 없이 식사라니, 휴가 기분이 난다고 자찬했다. 가게 문엔 거친 글씨로 휴가 일정이 적혀 있었다.


  빙글 돌아 초등학교로 다시 걸었다. 학교로 오르는 계단이 그늘져 시원해 보였다. 걸음을 위로 향했다. 학교에 개를 데리고 오신 분들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개 산책 때 이 계단을 올랐구나. 누군가가 이 오래된 학교가 곧 폐교한다고 알려줬었다. 한때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학교였으나 지금은 전교생이 백 명도 안 된다고 했다. 혼자 비장해져 어쩌면 1년 뒤 없어질지도 모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서울 도심 학교의 2배는 될 크기의 너른 운동장이 있었다.


  아주 옛날에 이 학교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시내의 아이들 중 상당수는 이 초등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견학했다. 그때 나는 시내를 선망했었다. 시내의 아이들이 같은 시에 속한 우리 동네의 이름을 들으면 늘 갸웃거렸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학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진학하는 것만으로 변방의 우리끼리는 유학이라 표현했기 때문에.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교양이나 상식처럼 시내의 것들을 익혔다. 이 학교도 시험과목 중 하나였다. 그랬다. 그랬었다.


  다시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왔다. 노캔 헤드폰을 잠시 내리니 매미 소리가 찌르듯이 사방을 감쌌다. 학교의 나이만큼 오래됐을 나무들은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계속 부서졌다. 아, 여름이네. 갑자기 여름방학 세계관이 됐다. 등에 둔 학교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맡겨졌을 때 잠시 다닌 추억이 얽힌 학교가 됐다.


  젊은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할머니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다 그 동네를 지키던 젊은 사람들과 삼각관계로 엮이는 인외(人外)물을 읽었다. 여름방학을 사랑하게 됐다. 관념적 여름방학. 여름방학의 이데아. 그러고 보면 휴가 내내 옥수수나 감자 따위를 열심히 먹었다. 얼음을 띄운 찬 보리차에 즙이 손목을 타고 줄줄 흐르는 옥수수는 늘 이상적인 여름 스케치 중 하나다. 옥수수는 다른 것으로 치환할 수 없지만 보리 차는 할머니표 미숫가루로는 대치할 수 있다. 받는 즉시 국사발 채로 쭉쭉 들이키지 않으면 맛이 없었다. 여름마다 미숫가루는 맛있고 할머니는 여전히 엄마를 괴롭히고.


  "내 새끼들 욕봤다, 욕봤다." 반기는 포옹의 채취가 낯설어서 몸을 뒤로 뺐다. 답을 알면서도 몇 밤 자면 집에 가냐고 매일매일 물었다. 마지막 날에 '안녕히 가세요, 순천'이 등 뒤로 멀어지면 까닭 없이 울었다. 앞자석 룸미러에 우는 얼굴이 잡히는 게 너무 싫어서 웅크리고 훌쩍였다. 여름방학이란 그런 것이다. 지나고 나야 좋아서 아쉬운 것. 물놀이 내내 모르다가 며칠 뒤 벗겨진 피부처럼 나중에야 변화를 깨닫는 것. 여름은 휘말림의 계절이고 여름방학은 공간과 시간이 더 한정되니 '여름-디럭스' 느낌이라 더 좋은걸.


  거리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현대사 드라마 세트장을 걷는 것 같았다. 목판으로 여인숙이라 적힌 곳이 있었고 그날은 유별나게 대문이 열려있었다. 여인숙이라, 여관과 그 내부가 비스무리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본 내부는 여관보다는 KBS1 'TV소설'에 나올 것 같은 서민형 단독주택 마당과 작은 방문들이 있었다. 구석에서 누가 등목이라도 할 것 같네. 흥미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들어가 볼 만용은 없어서 걸음을 돌렸다.


  문방구엔 뽑기 머신들이 여러 개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라 사진을 찍다가 뽑기마다 '귀멸의 칼날'이 적힌 걸 보니 2021년은 맞았다. 빈 거리에서 나만 생명력을 독차지한 것처럼 젊음을 뽐내며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지금 설정값은, 방학이라 할머니 댁에 혼자 내려왔는데 심심해서 읍내를 쏘다니는 중인 거야, 알겠지. 그래도 시간이 너무 안 갔다. 왜 그 소설 속 인물들이 사랑에 빠졌는지 알겠군. 무료한 할머니 댁에서 할 건 연애 놀음밖에 없군. 여전히 덥고 허기졌다. 유일하게 오픈한 분식점에 들어갔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빵 같은 구조였다. 학교 앞 물가를 고려해도 어지간히 가격이 쌌다. 근처 맛집을 벤치마킹한 듯한 메뉴를 주문했고 내부를 봤다. 데뷔 초의 샤이니의 교복 브랜드 포스터, 유빈이 막 합류한 시기의 원더걸스 의류 화보,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엽서들과 세미 스모키를 한 아이유 포스터가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포스터 위에도 낙서가 한가득이었다. 벽마다 매직이나 컴싸로 채운 낙서로 빼곡했다. 내용 대부분은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와 누구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기록 혹은 연예인의 본명을 적으며 일방적인 소유관계를 선언한 것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지리상 위치로 이곳과 가까운 학교보다 변방의 모교나 똑같이 변방의 다른 학교, 아예 다른 행정구역의 학교들의 이름이 낙서의 다수였단 거다. 가까운 사람들은 여기 안 온단 거지. 그러나 시내로 원정 온 우리들은 이름 한번 남겨야 한단 거지. 신인 시절의 연예인 포스터와 인정 욕구로 가득 찬 낙서들이 총체적으로 사랑스러워서 이 시간이 멈춘 가게가 눈물 나게 좋아졌다. 거기다 TV에선 2004년작 <부모님 전상서>가 나오기 때문에. 주문한 짜쫄라볶이 나왔다.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2인분이 나왔지만 모조리 흡입했다. 고등학생 때 위장처럼.


  부른 배로 카페에 가 크로플을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음료도 액상과당으로 시켰다. 자해적인 탄수화물과 당분 섭취였다. <명랑한 은둔자>를 읽다 친구가 생각나 대뜸 내용을 찍어 전송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은둔 중이구나. 지루해져서 곧 귀가했다. 여름방학 체험 동안 더위라도 먹은 걸까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도 자꾸 눈이 감겼다. 매미소리가 계속 방으로 침범했다. 여름이다. 여름이야. 곧 입추지만. 입추 후엔 밤바람에 서늘함이 뒤섞이겠지만. 지금은 영락없이 여름이야.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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