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자.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왜 쓰는가. 왜 써야만 하는가. 왜 쓰기를 멈추면 안되는 걸까.
글쓰기와는 관련없는 인생을 살았다. 일기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나에게는 고리타분한 일처럼 느껴졌다. 장황하고 현실에도 없을 것 같은 허무맹랑한 소설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책편식이 심하다 못해 한 장르로 굳혀져 있었다. 그런 내가 그나마 좋아했던 장르가 추리소설, 공포소설이었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이 글쓰기에 대한 책을 냈다니. 이건 안 읽어 볼 수가 없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 봤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작가가 되고는 싶지만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대마다 꼬박꼬박 5센트씩 모았다면 지금쯤 맛있는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좀더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그리고 연장도)없는 사람이다. 결론은 그렇게 간단하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아...처음부터 팩트로 후드려 맞는 느낌이다.
작년 겨울, 어쩌다보니 부끄럽게도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브런치 작가를 단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글은 30편 남짓 쓰지도 못했다. 에세이 크리에이터 뱃지는 1일 1브런치를 하며 한창 불타올랐던 여름의 글들로 인해 운좋게 받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이 잘 안써졌다. 왜 일까. 글감이 없다는 핑계를 대보았지만 결국은 독서량이 어느 순간 확 줄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난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독서를 뒤로 미뤘다. 하던 일들이 산적해 있으니 독서는 사치와도 같아 보였다. 독서가 쉼이 되지 못하는 나에게 책 읽기란 늘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이거 끝내고 해야지, 저것만 다하고 읽어야지, 마음 속으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미뤘던 날들이 생각났다.
스티븐 킹이 우리집에 CCTV라도 달아놓은 걸까?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쏙 들여다 본 듯한 글을 썼을까? 달리말하면 이런 핑계가 꽤 흔하다는 반증일지도. 나는 독서라는 무기도 없이 글쓰기라는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고 흥분이나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절망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결코 완벽하게 종이에 옮겨적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결국 '두려움' 때문이다. 글감도 시간도 모두 핑계일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잘나가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라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런 부러움은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커져가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선택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고치면서 쓰고 또 써보아도 내가 원했던 글이 아니라는 실망감. 내 글은 절대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하게 쓰겠다는 자만심과 기대감. 모든 것들이 내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물이었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언어도 날마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 구두를 신을 필요는 없다.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가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나를 구속하고 있던 완벽함에 대한 두려움을 벗을 수 있게 해준 문장이었다. 시덥잖은 문장만 쓰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멋진 문체를 가지신 분들의 글을 보며 질투하고 부러워만 했다. 기본도 없으면서 '있어보이는' 문장에 집착하며 글쓰기를 망설였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매일 쓰는 나의 글에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히려고 했다. 매일 매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풀메이컵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쌩얼처럼 보이는 글이 매력적일 수도 있을텐데. 글에 잡티가 보이고 주름이 보이더라도 자연스러움이 또 다른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지.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글쓰기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은걸까? 막연하게 언젠가는 나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목표말고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독서가 싫었고 글쓰기가 싫었던 내가 변하게 되었던 계기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던 때 이 책을 만났다. 스티븐 킹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글쓰기에 대한 진짜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