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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Oct 10. 2023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건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들에 힘을 쓰다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다고 뭐가 변할까 싶었다. 그 생각이 한 번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끝없는 자기 비하와 혐오의 챗바퀴를 돌리며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멘 헤세의 유명한 소설 '데미안'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투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알을 깨고 나오면 바깥은 너무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점점 좁은 알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은 부화를 포기한 새끼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있고 싶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근사하지 않다


인생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던 지난 두 달은 나에게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이었다. 웅크리고 있던 세계를 나의 손으로 파괴해야만 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누군가가 같이 옆에서 이 알껍질을 깨는 걸 도와줬으면 했다. 만약 나에게 '데미안'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쉬웠을까. 아님 그와의 관계로 인해 더 힘들어했을까를 상상해 본다.



나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모든 일이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 있으면 깨질 것 같았던 껍질의 틈으로 바깥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얼마나 더 두드려야 할지 알 수 없다. 막상 깨고 나와 마주하게 될 세상은 실망스러움으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아니, 냉혹한 현실에 상처를 받고 다시 포근한 알껍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알껍질을 두드리고 있다. 자신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를 깨버리기 위해서. 다른 세계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오늘도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지금 나의 세계는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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