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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May 16. 2024

베이글 먹다가 턱에 쥐가 나도 오픈런은 해야지

자고로 베이글덕후라면

처음 베이글을 접한 건 회사를 다니던 때였을 테다. 아마도 2009년도쯤, 늦여름의 어느 날. 사실 난 베이글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먹었던 베이글은 하나같이 딱딱하고 퍼석하고 맛이 없었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발려진 바삭한 베이글을 먹고 베이글에 푹 빠져버렸다.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살짝 토스트 한 후 그 위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맛. 뭐든지 하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파는 나라서 한동안 출근길마다 아침으로 베이글을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갔다. 아! 물론 카페라떼도 함께.


그날따라 회사에 가는 길에 들른 빵집에서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베이글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늘 진열되어 있는 베이글을 토스트해 먹던 나는 새로 나온 베이글이라면 분명 환상적인 맛일 거라 확신했다. 어떤 음식이든지 바로 해야 맛있지 않은가.


'베이글, 토스트 해 드릴까요?'


토스트라니, 지금 이렇게 바로 나온 베이글에 토스트가 웬 말인가. '괜찮아요'라는 나의 대답에 점원은 잠시 갸우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잠시나마 우리 사이에 흘렸던 미묘한 기류를 깨달았어야 했는데.




회사로 출근에 자리에 앉아 시계를 바라봤다. 업무 시간까진 아직 여유가 있다. 흥분된 마음으로 온기가 남아있는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잔뜩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식감이 아니었다. 오븐에서 바로 나왔으니 바삭하게 잘릴 거라고 생각했던 베이글은 당최 끊어지질 않았다. 마치 고무를 씹는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질긴 걸까. 쫄깃하다 못해 고무를 씹는 느낌이 났다. 질겅질겅... 어떻게든 이 베이글을 씹어 넘기겠다는 의지로 씹고 또 씹었다. 그 순간 턱 주변에 근육들이 파르르르 떨리는 느낌이 났고 입 주변은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얼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턱 주변의 감각은 무디기만 했고 일하는데 불편함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에 얘기하고 병원에 갔다. 턱 주변 근육에 쥐가 났단다. 오늘 뭐 이상한 거 드셨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개미처럼 기어가는 목소리로 '.... 베이글이요.'라고 답했다.


베이글이 뭐라고. 턱에 쥐까지 난단 말인가.


그때 처음 알았다.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면 생기는 다리의 쥐처럼 턱의 근육에도 쥐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이후로 몇 년간 나는 베이글 덕후가 아닌 베이글 헤이터가 되어 베이글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니 그때의 기억은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난 다시 베이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 먹어봤던 베이글과는 달리 요즘 나오는 베이글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바삭하고 맛있었다. 거기에 베이글만 파는 베이글 전문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코끼리 베이글 등... 근처를 갈 때마다 들리고 싶었지만 웨이팅이 점점 길어져만 갔다. 오픈 빨 빠지면 와야지. 내년엔 사람 없겠지, 그렇게 몇 년을 쳐다만 보다가 드디어 사는 곳 근처에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생긴다는 소리에 베이글덕후의 가슴이 콩닥콩닥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오픈 소식 이후 갈까 말까 눈치를 살피다가 마음먹었을 때 가보자 싶었다. 아침운동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씻고 나왔다. 운동하다가 내린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도착해 보니 세상에! 아침부터 이 근처 사람들이 다 베이글 먹으러 여기에 온 느낌. 두 시간 반 웨이팅 끝에 드디어 입장했다. 유행 다 지나고 나서야 런던베이글뮤지엄에 들어오는구나.

뒷북을 울려라 둥둥둥!!!

먹고 갈 거라면 꼭 트리플머시룸수프를 추가하라는 말에 수프와 잠봉뵈르 베이글을 주문했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턱에 쥐라고는 1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식감에 반했다. 적당히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베이글의 씹히는 맛이 중독적이다.이래서 아직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구나. 이상한 베이글을 먹고 턱에 쥐가 나서 고생했던 그때가 머릿속에서 싸악 사라지는 맛이었다. 벌써부터 힘든 웨이팅 시간이 싹 잊히는 걸 보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다 맞아.

또 먹고 싶은 조합, 강력추천

이게 뭐라고 오랜 시간 웨이팅을 해야 하나. 기다리면서도 스스로 후회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긴 시간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것저것 재지 말고 일단 부딪혀보는 것도 인생에서 큰 손해는 아니지 않을까.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 보자. 누군가에겐 그 행동이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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