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에는
늘 그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가 있어서
늘 그 기억이 이끄는 길로 걸어 들어간다
그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는지도 모르면서
기억에만 안부를 전하며
그대는 늘 그 자리를 지켜주십사 주문을 걸고
오늘도 안부를 전하는 일은 미루고 있다
그냥 그곳에 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기억은 온전히 기억으로 안녕할 거라는 안녕을 기원하면서
기억의 소로길은 늘 고요하다
저녁해가 기울어지며
기억이 왜곡되어 비탈길로 가고 있을 때쯤
오늘은 전화를 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잠깐 희미해진 불분명한 기억의 회로를 더듬다 말고
전화기를 든다
긴 신호가 건너가고
기다렸다는 듯 신기하게도
늘 대답을 주는 목소리가 안도처럼 들려온다
언제까지라도 늘 그랬듯이
그럼 잘 있지 잘 있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