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목숨걸고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탐험했던 곳에 내가 와 있다니. 세상에. 초등학생 때 섀클턴 위인전 같은걸 봤는데 내가 남극에 와있네. 그땐 진짜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정말.
지금이야 매너리즘에 빠져 출남극이 목표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명예의 상징이었던 남극에 내가 와 있다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남은 2주, 잘 만끽하고 가야지.
난 도전정신이나 모험심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전제일주의.
다만 호기심이 많고 해보고 싶은 건 꼭 해야하는 성격일 뿐.
뭔가에 도전한다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혹은 실패해도 타격이 없을 것이라서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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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미지의 세계 혹은 겁나 춥고 겁나 먼 곳 정도로 생각했던 남극을 다시보게 된 날이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목숨걸고 왔어야 하는 곳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서 남극점 정복에 성공하면 부와 명예가 따랐던 곳이다.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쉽게 갈 수 있는 편은 아니지만, 바다표범이나 펭귄을 잡아먹어야 생존이 가능하진 않으니 얼마나 편해진건지. 추위는 몰라도 배고픔은 정말 없고, 그 추위조차도 건물이 있고 난방이 되고 거위털 파카가 있으니 훨씬 낫다.
그럼에도 내가 가게 될 거라고, 게다가 거기서 일하게 될거라고, 그것도 요리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십수년전 초등학생때뿐만이 아니라 남극에 가기 몇 달 전까지도 그랬다.
귀국하고 찾아본, 초등학생 때 읽었던 그 책. 집에 있던건 예전에 버리셨다고..
오기 전의 설렘과 기대와 걱정은 두달쯤 지나니 거의 사라졌고, 매너리즘과 향수에 빠져 심신이 피폐해져가던 중이었다. 출남극을 2주 남기고 본 남극 탐험가들의 이야기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든 셈이다. 조금 더 일찍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지금이라도 본게 어딘가 싶기도 하다.
3월 7일엔 남극에서 처음으로 별을 봤다. 달은 2월 13일에 처음 봤는데 온전한 어둠의 형대로 진짜 밤이 찾아온건 조금 더 뒤였나보다. 엄청 밝고 반짝이는데 빠르게 지나가는게 있어서 물어보니 인공위성일거라는 대답도 들었다. 맨눈으로 인공위성을 볼 수 있구나.. 나는 난생 처음이었는데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눈썰미 좋은 분들은 자주 발견하나보다.
밤이 찾아왔다는 얘기는 이제 일출도 볼 수 있다는 말. 아침저녁으로 일출과 일몰만 보고있어도 행복하다. 좀 많이 추워져서 문제지. 백야였던 1월 1일에 일출 만들겠다고 카메라 가렸다가 손 뗀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덧붙여. 혹시라도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시간들. 과연 그는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