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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Apr 08. 2021

아라온이요? 내가 먹어본 김치 중에 최고였어요

쇄빙선에서 겪은 제일 충격적인 일


 지난 글을 아라온에 타자마자 무척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는 말로 마무리지었는데(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감사하다) 그 충격적인 일은 바로 김치였다.

 한국에 있을 땐 거의 먹지 않지만 이상하게 외국만 나가면 생각나는 그것. 남극에서 그래도 배추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겉절이 등등 많이 먹어서 아쉽진 않았다. 라고 생각했다. 배에 타기 전까지는. 탑승하고 저녁을 먹는데 생김치-냉동김치의 반의어로서의-가 있었다. 5개월만에 보는 생김치. 처음엔 평소 먹던 양만큼 조금 담았는데 세상에 김치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싶었다. 메인 메뉴가 소갈비였는데 그건 조금만 먹고 오히려 김치만 한접시 넘게 먹었다.

 (그렇다고 다른 메뉴가 맛없었다는건 아니다. 아라온에서도 분에 넘칠만큼 잘 먹었으니. 나중에 아라온 메뉴를 정리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연구기간엔 야식까지 하루 4끼를 먹을 수 있었으니. 그 외에도 간만에 신선한 과일을 먹어서 무척 행복했다.)   

  아이스크림과 각종 과자, 빵 등이 무료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빠삐코가, 설레임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가? 거북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작 한국에선 1년에 하나 먹을까 말까 한 아이스크림들이다. 하지만 반년 만에 혀를 간질이며 사르르 녹는 차가운 느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서너개를 해치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쇄빙선 위의 삶은 자유,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을 하지 않으니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그리고 책임. 갑판에 나가서 바다를 구경하다보면 ‘여기 빠지면 어떻게 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항해사 분께 여쭤보니 각자도생해서 자기 목숨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빠져도 알 수가 없고, 얼음이 떠다니던 바다는 어차피 빠지면 몇 분 안에 죽을 테니까. 물론 파도가 많이 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잠기고, 갑판에서도 상체 전부를 바깥으로 내밀지 않는 이상 빠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냥 이걸 읽는 사람들을 겁주고 싶었다. ‘쇄빙선’. 발음만 들어도 으시시 하니까.

   

 일기도 조금 뒤져봤는데 남극 근처 바다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본다. ‘어젯밤에 두 번이나 깼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침대가 1m씩 밀리고 건조대가 무너지고.. 일어나서 가습기 물 다 빼고 코드 뽑아 놨다.’ 배가 전후좌우로 10도씩 기우는데 각도기로 보면 10도가 무슨 대수냐 싶지만, 중력이 굉장히 감소하는 경험을 10분 간격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서타는 롤러코스터 혹은 순한맛 디스코팡팡에서 걷고 자고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순한맛이면 할만하겠네 싶은 마음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10시간씩 탄다고 생각하면 말끔하게 사라질거다. 그래서 모든 통로에 손잡이가 있고 냉장고에는 문 고정장치가 있다. 3층에 있는 방까지 파도가 보이고 파도가 창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물 속에 있는 기분..까진 아니고 좀 시끄럽다. 물론 신기하긴 하다. 며칠은. 하지만 그래도 헬스장은 문을 열고 사람들은 탁구를 친다. 파도가 적당히 거세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있다.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다가 붕 뜨거나 도무지 예측 할 수 없는 궤적의 탁구공을 맞추려고 날아다니는 모습. 당사자보다 구경꾼이 더 재밌는데 재밌어하는 구경꾼 때문에 결국엔 당사자도 재밌어지는. 물론 나는 모서리에 이마 깨질까봐 탁구는 치지 않았다.


 아참 그리고 3월 31일날에는 한국까지 배타고 가는걸로 결정됐다. 뉴질랜드에 내려도 2주 격리에 항공권도 구하지 못해서 호텔에 기약없이 틀어박혀 있어야 할 수도 있으니. 또 비행기를 구한다 해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니. 쇄빙선 타본 것도 처음인데 이걸 타고 적도를 지나 한국까지 40일간 만삼천킬로미터를 가게 되다니.


 사실 1년 전 오늘은 뉴질랜드 근처에 도착했고, 하루 뒤에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헬지 조종사들이 내렸다. 게을러서 글이 좀 밀렸을 뿐.,. 오로라랑 은하수 본 것도 정리해야되고 뉴질랜드에 정박했던거랑 태평양이랑 날치랑 돌고래랑..! 으어 내 일기를 보는건데도 유적지 유물 발굴하는 기분이다. 마치 남의 일기 보고 자서전 대필해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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