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뚜 Apr 15. 2022

사람간의 거리는 어느정도가 좋겠습니까

사춘기 아이와 자라는 이야기

늦은 밤.... S가 울었다.


친구들과 다자통화를 하는 중이었다.새벽1시를 넘기고 있는데 S는 잘 생각이 없는 듯 했다.평소같으면 진즉 S의 방문앞에서 얼른 자라는 소리를 여러번 소리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S가 우는 걸 본 게 언제인가 더듬어보았다.친한 동생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때 분해서 찔끔 눈물흘렸고, 초등시절 모 언니가 자기한테만 유독 무섭게 군다고 울었었다.


뒷 사건때는 공동육아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그 부모에게 얘기했었으나 아무런 개선이 되지 않았다.전체회의에서 몇차례 논의되었어도 그 부모는 딸을 붙잡고 진지하게 이야길 주고받지 않았다.되려 자기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얘기를 했었다.


수개월을 속앓이했던 기억이 났다.그 뒤 다른 아이에 대한 행동이 문제가 되어 그 집은 중간에 조합을 탈퇴했다.떠올리면 열불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때의 나는 속상하지만 아이들사이의 일이니 곧 지나가리라 생각했다.같은 조합원사이에서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드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어, S의 어려움의 무게를 가벼이 여겼는지도 모르겠다.흥이 많고 천성이 밝은 S기에 그 시기는 금방 지나갈거라, 아니 그러길 바랬다.그러나 결론적으로 S는 친하게 지내던 그 언니가 갑자기 눈앞에서 자기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른 아이들을 선동하며 이유없이 짜증내는 걸 수개월간 겪어야했다.


그 집딸로부터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집 부모가 강경하게 대처하는 걸 보고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같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아이들사이의 일이라는 이유로,유난떠는 엄마로 비춰질까 지레 걱정으로 내가 S의 어려움을 뭉개선 안되었단 사실을.


왜 제대로 따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자책은 꽤나 오래갔다.다른 집 딸사건을 계기로 조심스레 그 언니에 대한 감정을 물었고 이젠 그 언니를 만나도 무섭지 않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안도하긴 했지만 S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빚처럼 남아있다.내가 정색을 하고 제대로 화를 냈어야했는데....자식싸고 도는 부모라고 지탄받을까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자식을 보호해야하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어야했는데 결국 S를 볼모로 호구노릇을 한 것만 같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리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다른 것보다도 S가 남에게 약하게 보였을 거라는 사실이었다.말로 지지않는 영악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지도 않던 S는 나이에 맞게 그저 순수했다.그다지 호감이 아니어도 자기에게 다가온 사람이라면 곁을 내어주었다.


그 일이 있기전까지 몸으로 활기차게 노는 S를 보며 약하다는 생각을,남이 약하게 볼 거라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짜증내는 상대에게 일일이 되치지 못한 것이 남들로 하여금 함부로 대해도 되겠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가 다르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거라고 생각하는 나'도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나에게 S는 기가 약한 아이가 아닌데 남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S는 중3학년이 되면서 부쩍 친구들이 많아졌다.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친구와 전화로 붙어있다시피했고 운 날은 친구들과 넷이서 놀이공원을 다녀왔더랬다.평소 주말과 달리 새벽부터 꽃단장하고 나가 밤10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다.친구들끼리 서울먼거리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녀온 게 신기해서 칭찬하려고 말을 거니 들어온 S가 재미없었다고,ㅇㅇ이가 싫다고 울먹였다.ㅇㅇ이라면 요즘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궁금증이 폭발했으나 S가 굉장히 피곤해 보여서 더 얘기못했는데.....S가 울고 있는 거였다.요전날 다른 친구들과 만나 놀이터에서 수다떨고 있는데 ㅇㅇ이가 전화해 자기만 빼고 노냐고, 어떻게 그러냐고 화를 내서 순간 변명을 하는 자기를 발견했다는 이야기.ㅇㅇ이 포함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ㅇㅇ이가 뒤늦게 나와선 떨떠름한 얼굴로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기분풀어주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놀이공원에 선 ㅇㅇ이가 제일 친한 S를 빼고 다른 아이 둘과만 번갈아 떨어져 다녔고 S의 사진을 단 한장도 찍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사진만 보면 자기는 없고 세 명이서 놀러간 것 처럼 보인다는.이게 자기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 아직 ㅇㅇ이한테 얘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100%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아니면 미주알고주알 속을 다 드러내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S는 또 그러고 있었다.저게 또 언젠가는 S에게 약점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걱정은 되나 40년훌쩍 넘게 살며 터득한 내 생각을 S에게 전달하며 주입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일일이 끼어들어 코칭을 할 수도 없고 S도 스스로 겪어가며 몸으로 깨우치는 것들이 있어야 성장할 것이다.


그래도......하나만은 전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와 통화하느라 바쁜 S에게 쪽지하나를 내밀었다.


'S야.니가 뭐라고 느끼든 그게 맞아.틀린 거 아니야'


엿들은 거냐고 꾸사리를 좀 먹었다.니 목소리가 하도 커서 다 들리더라고 했다.

자기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S가 나인듯 안타까웠다.사회화의 부작용인지,성격의 문제인지 부정적인 일을 맞닥뜨릴 때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맞아?'라고 때로 의문을 제기하는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검열은 이제 그만.화나면 화나는 대로, 질투나면 질투나는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일 때도 되었잖니.(물론 거친 표현을 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다년간의 조직생활을 하며 관찰한 결과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맺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였다.멀지도, 엄청 가깝지도 않은 거리.아직은 뜨겁게 달라붙고 그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될 걸 기대하는 S겠지만 때가 오면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아프게 깨지고 단단한 살이 오르면 그땐 가까이해도 덜 뜨겁고 조금 멀리해도 덜 차갑다는 것을.


순수하기에 상처받는 어린 날과 결국엔 갑옷을 두른 어른이 되고 난 후 중 정작 어떤 것이 진짜 인생인 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덜 아프기위해서 경험으로 선택해 받아들이는 것일 뿐.

매거진의 이전글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