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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04. 2022

모퉁이

엑스틴 엄마 독립기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고가를 넘어갈 때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은 마치 성냥갑을 연상시켰다.여러개의 성냥갑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라고 할까.요즘 신축은 직사각형에서 좀더 나아가 비튼 모양으로 건축이 되기도 하던데 여전히 직선이 주를 이룬다.

서울아파트 35층 규제가 사라진다는 뉴스가 떴다.주거용아파트층수를 이전 시장때부터 35층이하로 제한했는데 이게 풀린다는 것이다.건물용적률은 상향되지 않아서 아파트공급문제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단다.슬림한 고층건물이 한강변을 장식하고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아름다운 뷰를 지향하는 고층건물때문에 조망권을 방해받는 사람들이 생기지는 않을런지.


구부러져 꺾어져 돌아간 자리, 모퉁이...아파트들 사이에도 모퉁이는 있다.다만 칼로 자른 듯 쭉 뻗어 냉정함마저 풍기는 직선과 직선이 만나는 그런 곳이다.시인 안도현은 길에,집에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워할 일이 없을 것이며, 막막하고 뻣뻣한 직선이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라고 한다.안도현 시인이 말하는 모퉁이는 직선의 삭막한 그것은 아닌 듯 싶다.작은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좁다란 골목길을 따라가다 돌아서게 되는 그런 모퉁이를 나는 연상했다.

시인의 저 문구를 가만히 되새기다 인생에도 모퉁이가 필요한 것인가?그럴지도 모르겠다...에 생각이 이르렀다.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돌아서면 맞이 할 그 다음의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모퉁이에게 있으니.


꽃길만 걸으라는 인사가 있다.일종의 'God bless you!'.그 말이 상대에게 축복의 언어임을 잘 알고 있다.상대가 앞으로 무탈하기를,상처받는 일없이 행복한 날이 더 많기를 기원하는 덕담의 언어라는 것을.말을 건넨 사람의 따뜻한 마음처럼 나 역시도 굴곡없는 꽃길만 걷고 싶었다.지금 생각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다.꽃길은 진흙탕없는 길이며 신속하게 성취의 길로 나아가는 직선의 길이다.굽고 때론 질퍽거리는 웅덩이를 지나기도 하는 모퉁이를 배제한 길.꽃길만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덕담과는 다르게 현실속에서 꽃길만 걷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을 뿐.그런 이유로 꽃길만 걸으라는 말은 덕담으로서의 효용가치가 큰 지도 모르겠다.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것에 대해 기원하는 의미이니.쭉 뻗은 길을 가기 힘들거라면 계속되는 꽃길은 없다고 받아들이기라도 해야겠다.


전통적인 가족형태만이 온전한 거라는 생각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였다.후처로 들어간 엄마,전처자식들인 오빠들에게 억눌려 살았던 가정 환경의 영향인 건지,부모모두있는 가정만을 은근히 정상으로 몰아가는 사회의 틀안에서 자라서인건지는 잘 모르겠다.현모양처 엄마,능력있고 자상한 아빠,애교있는 딸,씩씩한 아들....미디어에서 자주 보여주는 이런 판에 박힌 이미지도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쉬는 듯 하다.그러한 내가 강고한 그 틀을 깨고 나가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아서야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그 허울의 끈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내가 실패했다는 것을.힘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되뇌였던 것 같다.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앞으로 괜찮아질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나에겐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런데 실패가 맞았다.다만 인생 전반에 걸친 실패가 아니었을 뿐.결혼이 끝났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보는 건 과장해석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인생의 여러 이벤트 중 하나가 실패한거라는 생각이 맞았다.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인생에도 모퉁이가 있다면 나도 모퉁이를 돌았다.아니 돌고 있는 중이다.뒤안길에는 고군분투했던 13년의 결혼생활이 있다.이제 가장으로 거듭나는 모퉁이.결혼생활을 유지해야만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지난날을 두고 돌아서는 모퉁이.이 앞에 무엇이 있을 지 생각해보는 모퉁이.이왕 다음 모퉁이까지 나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개미하나없는 시멘트길을 직선으로 치닫다 이어지는 도시의 모퉁이는 아니고 싶다.구불구불해도 가는 길에 개망초도 보고, 나팔꽃의 땅강아지를 불러볼 수 있는 길로 모퉁이를 향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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