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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Feb 12. 2021

명절 음식

시간에 새겨진 문화 흔적

이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지만 어느 해 보다 덧없이 느껴지는 설이기도 하다.

가족끼리 모일 수 없는 설. 어떤 사람들은 아쉬워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명절을 지금,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설 하루 전날, 집을 깨끗이 치우고 차례상 준비를 위해 시장을 나선다.

예전만 못하는 재래시장이라고 하지만 우리 앞 세대 어른들은 여전히 전통시장을 찾는 듯 많은 사람들로 시장이 붐빈다.

이전과 다른 점은 크게 많이 쌓아놓고 팔던 채소나 과일 등이 조금씩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바구니마다 1,000원, 2,000원 적혀 있는 콩나물, 부추 등이며 과일도 낱개로 혹은 바구니로 7,000원, 10,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준비해 간 장바구니에 하나씩 담다 보니 소박하지만 있을게 다 있는 차례상 장을 보게 되었다.


싫은 시장에 가기에 앞서 꼬마 김밥을 말아 두었다.

부모님 집에 굴러다니는 꼬마 김밥 재료를 보는 순간 미리 김밥을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김밥을 해 놓으면 아침 식사로 먹어도 될 듯하고, 아니면 김밥 튀김을 해도 될 듯해 부지런히 김밥을 말아둔 것이다.

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재료를 손질하고 탕국을 끓이고 튀김을 준비하면서 야심 차게 오래간만에 김밥 튀김을 해 봤다.


1시간 남짓 튀김을 하다 보니 차례상에 올려질 튀김이 모두 준비되었다.

조금씩 음식을 하다 보니 금방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동생에게 '점심을 먹을까?'물어보니 자기는 그냥 김밥 튀김에 라면을 먹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튀긴 김밥을 하나 입에 질끈 문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김밥 튀김을 간혹 해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생이 늘 '누가, 김밥 튀겨먹자'했던 것 같다. 잠시 잊고 있었던 가족의 입맛.

맛있게 먹는 동생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여전히 설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함께 만들어 먹던 그 모습과 입맛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명절을 맞이하면 동생들과 시장을 보고 튀김을 하는 것이 일이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해 보라고 늘 장을 볼 수 있는 돈을 주셨고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를 정하고

같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열심히 차례상을 준비했었다.

장바구니는 언제나 든든한 첫 동생이 들어줬고 씻고 썰고 다듬는 손질도 동생들이 도와줬다.

치즈와 시금치가 들어가는 돈가스를 먹고 싶으면 직접 돈가스 롤을 말았고,

깻잎 튀김이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 주는 속을 깻잎에 이쁘게 넣어 튀기기에 좋도록 준비하는 것 또한 동생들의 몫이었다.

어느 해는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세 남매가 만두 백개 정도를 직접  빚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일까, 완자나 삼색전 등 모양을 내는 재료 손질은 남동생들이 더 이쁘게 다듬는다.


가족들과 만나지 말라는 설을 맞이하면서 우연히 한동안 잊고 지내던 어릴 적 맛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문화다. 지역의 문화이자 가족의 문화이기도 하다. 이것은 고로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점점 사라져 가는 명절맞이. 덧없는 일, 부차 한 일,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명절 음식이다.

그런데 마음을 조금만 돌려 보면 이 또한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다.

반조리 식품, 배달 음식 등 너무나도 과도하게 넘쳐나는 식문화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쉽게 여기는 일상이 명절 음식을 지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시간이 축적된다면 언젠가는 엄마의 손맛, 명절 음식, 계절 음식, 지역마다의 특색 있는 음식들이 모두 지워질 것이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을 즐겼는지, 혹은 힘들어했는지 문화 기억이 집이 아닌 공장(기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번 설에 함께 하지 못하는 동생 또한 김밥 튀김을 좋아했는데, 이번 처럼 바삭하게 튀겨진 김밥을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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