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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Oct 24. 2021

나는 좋은 대표였을까

팀원이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내가 회사를 떠나는 날이 오자 그전에 우리 팀을 떠났던 팀원이 생각났다.




합병 이야기가 나오기 한달 전, J가 팀을 떠났다.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J가 휴가 마지막 날, 카페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러왔다. 잘 쉬고 왔냐 물어보고 자리에 앉았는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는 J의 눈에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 전에도 한번 그만두고 싶다는 J를 붙잡은 적이 있었던 나는 이번에는 잡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요즘 부쩍 어두웠던 J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월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아니 이건 많이 미화된 얘기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지도 못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대학생이었던 J는 곧 교환학생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면 언제까지 하겠냐고 물어봤을 때 J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왜 그랬는지, 아마 너무 힘들어보였던 얼굴 때문에 솔직히 그냥 언제까지 하고싶냐고 물어봤고 J는 가능하다면 당장 내일부터 안 나오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정리해야 할 파일은 오늘 다 해놓고 내일부터 나오지 않는 걸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J는 그만뒀다.


그때까지 한달 동안 일했던 인턴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우리 팀을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퇴사 처리도 서툴렀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우리 팀을 떠난 적이 없어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영향을 받을지 몰랐다. 처음 몇 달 정도는 J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J가 하던 일은 정말 많았고 하루만에 작성한 인수인계 파일은 당연히 부족했다. J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던 걸 보고 힘든 일이 있냐고 괜찮냐고 몇 번 물어도 봤는데 그때는 다 괜찮다고 했었다. 우리는 직급이 있고 위계가 있는 조직도 아니었고 다 함께 일을 나누어 하고 있었는데 왜 미리 얘기를 안 해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미안해졌다. 공동 창업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합병 후에 팀원으로 일해보면서 어떤 대표가 좋은 대표였고 어떤 대표가 별로였는지 알고나니 내가 대표였을 때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수평적인 관계라고 해도 느끼는 건 다르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팀원이 되고보니 사수가, 상사가, 대표가 아무리 편하게 해주려고 해도 내가 대표일 때만큼 편해질 수는 없었다. 대표일 때도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내 의견을 말하는 것만은 자유로웠다.


업무적으로 피드백을 주지 못했다. 나도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몰랐다. 자신이 없었다. 두렵고 막막했다. 불안했다.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피드백을 줄 만한 역량이 그 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동료였다. 팀원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좋은 피드백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업무 분배를 잘 하지 못했다. 뭐든지 잘 해내고 빨리 해내는 J에게 너무 많은 업무를 줬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고 정말 미안해졌다. 그때는 내 부담을 덜어가주어 나는 한결 편해졌고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J에게 얼마나 부담이었을지 잘 몰랐다. 내가 편해져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제대로 된 보수를 주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나는 많이 벌면서 팀원들에게는 주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전히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




창업하기 전에 회사에 다니면서 시스템을 배워야한다, 는 말을 많이들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조직이 아닌 이상에야 팀원으로 일하며 전체 시스템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일부만을 보고 내 권한 안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창업했을 때 필요한 근육은 팀원으로 일할 때 필요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팀원이 되고 나서 헤맸던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거였다. 내가 대표일 때는 주어진 상황에서 좋은 결정을 하면 충분했다. 팀원이 되고 보니 의사결정권자가 결정을 할 수 있는 배경지식과 각 결정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나의 의견을 덧붙이되 최종 결정은 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회사에 다녀봐야 한다는 것 자체는 동의한다. 팀원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어떤 상사가 좋은 상사인지 어떤 상사가 함께 일하기 힘든 상사인지 알기 위해서. 대표로만 일해봤다면 평생 알기 힘들었을 것들을 팀원으로 일하며 짧은 시간 안에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내 회사를 다시 만들게 된다면 그전보다는 좋은 대표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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