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권선영

by 하루달


*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엄마는 1945년에 태어나셨다. 엄마가 살았던 시대를 알기 위해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 구수한 통영 경상도 말은 엄마의 말투로 바뀐다. 엄마는 부산에서 태어나셨다. 서울로 전학을 왔을 때 친구들이 사투리를 쓴다고 엄청 놀렸다고 한다. 엄마가 평소 서울말만 쓰셔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는 친척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쓰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서울말인 줄 알았던 단어들은 부산 말인 경우도 많았다.


<김약국의 딸들>처럼 엄마집도 딸 부잣집이었다. 넷째 딸까지 있는 점이 소설과 같고 막내 아들이 있는 점이 다르다. 소설의 내용은 비극적이다. 비극으로 끝나는 소설과 달리 엄마는 자상한 남편을 만나 행복했다. 첫째 이모는 어린 나이에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평생 고생을 많이 하셨다. 둘째, 셋째 이모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막내 외삼촌은 유일한 아들로 혼자 대학을 나오셨다. 엄마는 남동생을 위해 공장에 다녔고 나중에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보조 간호사로 일을 하셨다. 거기서 원장 선생님인 고모할머니의 중매로 아빠를 만나셨다. 외모가 뛰어났던 엄마는 그 덕분에 결혼을 잘한 거라고 생각하신다. 김약국의 셋째 딸도 과거가 있었지만 뛰어난 외모로 부잣집에 시집을 간다. 외모는 과거에 여자에게 힘이 되었나 보다. 이것이 엄마의 가치관을 형성했다.


엄마는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지만 삼촌과 할머니는 잘 사는 엄마 덕을 보았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엄마는 할머니의 제일 큰 자랑이 아니었다. 엄마 역시 아들과 딸을 차별했고 딸을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는 일보다는 결혼으로 안정을 누리도록 하고 싶어 하셨다. 자신이 받은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딸에게 좋은 직장을 얻으라고 하셨어야 했을 것 같은데 엄마는 왜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셨을까? 엄마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만족하신 것일까? 엄마도 자식 세 명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조한 걸 보면 오래 전해져 온 사회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물고기가 바다에 천천히 스며들 듯 우리 삶은 사회의 영향을 서서히, 그러면서 많이 받고 있다. 차별을 받는다고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과 통념이 자연스레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나는 결혼관이 다른 엄마에게 많이 서운했다. 이 점에 대한 오해는 오랜 시간 엄마를 멀리하고 미운 마음을 갖게 해서 나와 엄마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게 했다. 깊은 오해와 시간의 강이 우리를 막고 있었다. 같이 있는 동안 서로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했다. 그러나 투정을 부렸던 나조차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내 모습을 똑바로 보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내게서 내가 아닌 것 같은 모습을 본다. 그리고 엄마도 보인다. 그토록 미운 엄마는 시대 속의 한 인물로 그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인생을 치유해야 했다. 그러나 엄마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지 못하고 치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행이 되물림 되었다. 동아줄처럼 단단하고 견고하게 묶인 우리 둘의 인연 속에 사회라는 상처도 새겨지는 것이었다. 꾹 참고 있다가 상처에서 오해와 아픔의 고름이 흘렀지만 우리는 시간과 사랑의 힘으로 그것을 회복하고 있었다. 울고 웃고 그것이 우리의 동아줄이다. 엄마와 나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차별의 공동체 속에 함께 손을 잡고 동그란 원 속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쌓이던 사랑과 증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친밀감과 이해로 바뀌었다. 우리 동아줄에는 ‘여자’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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