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초등학생 때 이사를 했다. 엄마는 710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올 때도 710번 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두려웠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학교에 무사히 도착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 다시 버스를 탔다.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아침에 내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버스를 탔다. 처음 가는 길이라 집으로 제대로 가는 줄도 모르고 몇 번 정거장을 거치는지 세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정거장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처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눈물이 나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를 가냐는 기사님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버려 생쥐처럼 작아지고 결국 엄마, 아빠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무서움에 떨었다.
엄마가 남기신 일기장에는 평생 말씀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잃어버려 무당의 집에서 지냈다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무당의 집에서 엄마를 찾았을까? 혹시 너무 어려운 살림에 엄마를 무당에게 맡겼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찾은 것이 아닐까? 엄마가 이 사실을 이제껏 이야기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 일기장은 잘 깎은 연필과 함께 내가 엄마에게 드렸던 것이다. 자서전을 써보시라고 권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잘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떠오르는 것을 솔직하게 적으라고 했다. 그 뒤 가끔 잘 쓰고 있냐고 묻기만 할 뿐 일기를 보지 않았다. 엄마의 사생활 같기도 하고 다 아는 내용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그 일기를 조금 일찍 봤더라면 엄마의 삶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을 텐데, 후회는 사나운 짐승이 되어 내 목구멍을 사정없이 할퀸다.
엄마에 대해 잘 몰랐다는 무지를 깨닫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다. 만약 할머니를 잃어버린 추억이 아닌 버려진 추억이었다면 자식과 며느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는데도 말이다. 그 두려움을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었다가 글로 써 내려갔을 때 엄마는 울었을까? 아이가 되어 할머니를 원망하다가 다시 용서했을까? 또 나를 잃어버렸던 추억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이별을 하고 있는 지금 과거의 추억은 나에게 큰 위안과 힘을 주고 있다.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엄마는 그대로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추억의 옷을 입고 미소 지으며 나의 앞에 나타난다. 한숨이 되기도 하고 울음이 되기도 하고 다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