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에게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엄마의 인생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 존재, 진정으로 사랑하던 존재가 사라졌다. 나는 엄마도 잃을까 두려웠다. 내 슬픔보다 엄마의 고통에 신경이 더 쓰여서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 엄마가 우르르 무너질 것 같아 말하지 않고 슬픔을 가슴속에 담았다. 아빠는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경제적인 지탱만 할 수 있는 집.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전혀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엄마는 통보를 하셨다. 집을 팔았다고. “그래, 잘했어” 엄마가 원하시는 것은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는 맘을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셔야 했다. 엄마는 왜 그 집을 파셨을까? 혼자 외롭다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기억은 나를 그 집이 있던 동네로 이끌었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은 나를 둘러싼 공간을 낯설게 만들었다. 여기인가 저기인가 한참을 돌아다닌 뒤 겨우 우리가 살던 옛집을 발견했다. 희한하게 많은 집이 사라졌는데 그 집만 남아 있었다. 서로를 품어주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또 얻었는가?
외환위기 시대는 아빠를 회사에서 쫓아내고 성실한 자존심을 한없이 무너뜨렸다. 흰머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또 두 분이 발품을 팔아 산 우리 집은 그 시대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몇십 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 자리에 섰다. 계약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손은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고 아들이 태어나 산후조리를 했다. 상실의 공간은 다시 무언가를 채우는 생명이 태어나면서 활기가 돌았다. 시간은 흘러 다시 엄마의 부재로 이어지고 나는 또다시 이곳에 와 서 있다. 이곳은 실제 세계와 아득히 먼 시간적인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새장에 갇혀 있었다. 새장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무력감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 집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우리는 바다에 내던져진 것처럼 버둥거렸다. 덮쳐 오는 파도에 한동안 잠겼다 힘겹게 얼굴을 내밀며 버둥거렸다. 그러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다시 돌아온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들 없이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물음은 그 서러운 시간을 지나 내게 알려준다. 순수한 삶의 모습으로 뻗어 나가라고. 유산처럼 쌓인 사랑을 믿으라고. 다시 두터운 색채로 우리 집은 살아난다. 오늘은 엄마가 햇살로 나를 감싼다.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이 내 손을 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