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우주적인 활력이 필요한 일이다. 또한 그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인연도 필요하다. 나는 화초, 물살이(물고기), 병아리, 강아지를 키워봤다. 나와 인연이 가장 잘 맞는 것은 강아지이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감미로운 믿음이 있다. 감정이 오가는 연결이 유독 강아지와 잘 된다. 나의 시선이 강아지에 머문다.
엄마에게는 물살이와 새가 잘 맞았다. 강아지처럼 손 가는 것이 적어 키우기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들과 눈을 맞춘 것이다. 친오빠도 마치 엄마의 유언이라도 들은 듯 물살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나도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고민을 한다. 텅 빈 어항 속에 다시 물살이를 키워볼까.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없다. 내 마음 달래자고 그럴 수는 없다. 욕심과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며칠 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듣고 문득 엄마를 바람 속에서 찾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새를 좋아했던 엄마는 새가 되었을까. 한강에 떠 있던 오리들도 무척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장을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귀찮은 일을 하셨다. 우리는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닿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탁 트인 벌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다. 그저 자연 속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책을 보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몽골인은 외로움과 고통을 자연 속에서 승화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사랑을 남겨놓는다"라고 말하고 잘 있으라는 인사말도 "그리움을 남겨놓고 갑니다"라로 표현한다. 나는 바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자연은 그리움을 안아주고 사랑을 드러내게 도와준다. 드러내지 않아 곪았던 나의 고통은 잠시 바람 속에서 한숨을 돌리고 아주 사적인 노력을 하게 한다. 결론짓지 않는 시간 그것이 나에게 필요했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유목민인 것이다. 햇살이든 눈이든 바람이든 새든 나의 주변에 있어 내 시선이 머무는 것이 엄마이다. 내가 엄마를 위로하는 것인지, 엄마가 나를 위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