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내가 어릴 때는 그림책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림책 읽어주기가 붐이었고 좋은 그림책이 많았다. 엄마와 나의 틈을 그림책이 채운다. 나에게 읽어주지 않은 그림책을 엄마는 나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셨다. 갑자기 생각 난 그림책 <천둥케이크>. 제법 글밥도 많은 그림책이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좋아해서 읽어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내가 피곤할까봐 대신 읽어주신다. 엄마의 목소리는 무슨 색깔이었나? 대문 밖에서도 항상 엄마 목소리가 들렸고 엄마랑 전화기로 통화할 때에는 10센티 띄어서 말했다. 그런데 그 큰 목소리는 아니다. 조금 부피를 줄인 목소리로 무척 진지하게 리듬감 없이 읽는다. 그래도 아이들의 눈은 빛난다. 다 읽으시고 너무 재미있다며 당신이 더 즐거워하신다. 엄마도 그림책의 매력에 빠지셨다. 엄마는 중학교만 나오셨다. 그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은 지금의 대학교나 마찬가지이고 그 시절은 여자아이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 중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아빠 오시면 물어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어느 순간부터는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는 그림책 내용을 이야기하신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가 손녀가 천둥을 무서워하니까 지혜를 쓴 거지? 이 방법 괜찮네, 우리도 케이크 만들어볼까?" 엄마는 쾌활하고 영리하신 분이었다. 비록 고등 교육을 받지 않으셨지만 엄마 말은 뭐든지 옳다고 생각하고 자랐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영리한 엄마는 공부를 시키지 않고 외삼촌만 공부를 시키셨다. 할머니를 원망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가끔 내가 공부했다면 국회의원이 됐을 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조금 아쉬운 미소를 지으셨다. 그 점이 나랑 다르다. 나는 엄마 원망을 많이 하고 살았다. 아들과 차별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글 쓰는 딸들> 책을 읽으면서 뒤라스가 느낀 불안과 외로움, 보부아르가 느낀 절망과 회한, 콜레트가 느낀 슬픔과 반항심 모두 공감했다. 그녀들도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마지막 엄마의 죽음 앞에서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느낀다. 모두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또 갈구한 모습이었다. 나도 너무나 정서적으로 멀어진 엄마를 보면서 한편으로 용서를 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보면서 늘 괴로웠다. 강물처럼 흘렀던 우리의 인연이 또다시 그림책이라는 추억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언제쯤 이 감정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을까? 엄마를 허망하게 보내고 4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글을 썼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생생해지고 다시 그녀들의 글이 나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 안에는 아직도 그 시절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는 있다. 눈물은 아직도 메마르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