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by 하루달

* 이 글의 진짜 작가는 나의 부모님이다. 딸은 그들이 남긴 유산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동안 "금기"라는 소재로 글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금기된 일들은 많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가장 많았고 학생, 엄마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은 타인에 의해 나의 한계를 짓는 것이었다. 금기된 모든 일을 폭로하는 것은 억울함을 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학습된 나는 스스로를 금기시키는 부분도 많다. 금기가 일상이 된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분노한 억울함이라는 씨앗이 있다. 억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라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비슷한 상황으로 누르기도 하고 편한 상대를 만나면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참고 덮었다.


요즘 날이 좋아 퇴근할 때 창문을 열고 나간다. 창문에는 화분이 가득 있다. 출근해 보면 모두 달빛과 새벽 향기와 아침 바람을 받아 하룻밤 사이 몰라보게 예뻐져 있다. 새순이 핑크빛으로 올라온 싹을 본다. 나의 억울한 싹이 이렇게 예쁜 색이 될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마지막 여행에서 엄마에게 용서의 말을 전했다. 내가 주어이다. 내가 엄마를 용서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억울한 싹은 모질고 무뚝뚝하고 건조하게 전했다. 여전히 아들을 편애하는 엄마에게 지쳐가고 둘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한 나는 여행길에서 돌아와서 보니, 지금 4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부드러운 싹으로 변했음을 알았다. 그날 그렇게 말을 꺼낸 자체가 벌써 나는 엄마를 용서한 것이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엄마의 모습 또한 사과를 한 것이다. 그동안 엄마는 나에게 "사랑한다, 딸" 이라는 신호를 수없이 보냈다. 내가 받지 않았을 뿐이다. 갑자기 딸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엄마였다. 내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간과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 우린 엇갈렸다. 통과하는 시간이 달라 이제야 나는 엄마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억울함은 어떻게 사라지게 된 것일까? 누가 나의 마음을 다독였을까?


나는 예민하지만 예민함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다. 표현하는 것도 금기였기 때문이다. 시키는 일을 무던하게 토 달지 않고 하는 행동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런 칭찬에 길들여졌다. 그러나 서서히 예민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경제적 독립을 했고, 나와 닮은 딸을 보며 거울 속의 나를 느끼고,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다. 글이라는 매체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옹졸함에 내가 스스로 놀라는 자각은 그 무엇보다도 큰 울림이었다. 이러다 내가 나를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모두 충분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해 못해도 상관없다. 귀 기울여 주었으니 됐다. 엄마는 너를 위해서 용서하라는 짧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의 대화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같은 시간으로 향하는 중이었나 보다. 아름답고 젊은 엄마 또한 어떻게 억울함을 풀어야 하는지 몰라 배운 대로 살았고 나를 통해 엄마를 보는 시간을 보내며 다시 나의 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늘 억울하다고 징징대는 나를 보며 아파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애달파서 아프다. 부드러운 엄마의 품이 유독 그리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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