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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Oct 28. 2024

<칼자국>을 읽고

그들의 언어

어머니가 먼든 음식에는 칼자국이 남아있다. 나는 음식과 함께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맛나당’ 칼국수집을 한 어머니는 일하는 여자가 보여주는 당당함과 피로가 함께 했다. 어머니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사람들 중 더 작은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식구들을 먹였다.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에게조차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차렸다. 나는 허기, 배고픔을 모른다. 언제나 어머니는 무언가를 조리고 담그고 재고 썰고 있었다. 어머니와 칼은 젊고 단단하니 닮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임신 삼 개월째인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맛나당 식당으로 들어가 한숨 자고 일어나니 나는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꼈다. 그리고 사과를 사각사각 베어 먹는다.






제목은 칼자국이고 소재도 칼임이 틀림없으나 나는 어머니의 말이 두 번째 소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처음 <칼자국> 소설을 읽었을 때는 자식에게 식구에게 해먹인 음식과 함께 어머니의 아픔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 몸에 흐르는 칼자국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다시 읽어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숫기가 하나도 없던 서울깍쟁이 처녀일 때는 나는 시골의 말이 무서웠다.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외국어 같은 그 말들이 낯설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의 말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소리,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예리한 소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도 얼굴이 찡그리지기는커녕 환한 미소가 생긴다. 조금 더 그들이 오버하면 나는 빵 터지기도 한다. 상대가 무안할 정도로 나는 배를 잡고 찔끔 눈물을 흘리며 웃는다. 그들은 단단하다. 고단하다. 당당하다. 따뜻하다. 웃음이 나지만 가볍지 않다. 마치 그들의 삶처럼. 내공이 깊이 쌓인 그들의 언어가 사라질까 나도 아쉽다. 김애란 작가의 몸속에는 음식과 함께 삼킨 어머니의 언어가 살아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지식도 사실 어른들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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