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

by 하루달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엄마의 말뚝 1>을 더 자세히 쓴 소설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작가의 어릴 적 모습, 개인의 성장을 볼 수 있고 지난 역사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과 6.25 전쟁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소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6.25전쟁으로 부상당한 사람 몇 명, 사상자 몇 명, 전쟁 고아 몇 명, 미망인 몇 명...

이런 수치를 읽으면 숫자가 주는 양에 놀라기는 하지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어떻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고아가 된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답이 없다.

<엄마의 말뚝 1>을 읽으면 도대체 빨갱이가 무엇인지, 국군이 무엇인지 모른채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 몇 명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구나 알게 된다. 그리고 현재 풍요로운 시대에서 마치 역사책에서나 읽었던 6.25전쟁이라 생각하고 살던 현재의 엄마는 죽은 아들의 자식과 며느리를 보며, 또 부처님을 믿으며 고통을 잊은 줄 알았는데 마음 속 깊숙히 간직한 그녀의 애통한 마음은 그대로 침전되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 때의 눈물을 다시 흘린다. 그동안의 고통을 감춘 웃음이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원한과 저주, 미움이라는 괴물이 지금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산가족의 아픔을 너무나 쉽게 이해한다고 해서는 안될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작은 엄마들이 생각났다. 우리 집은 큰집이어서 명절 뿐 아니라 2달에 1번 꼴로 있는 제사, 경조사로 늘 친척들이 붐볐다. 자주 만나다보니 작은 엄마들, 고모와 친하게 지냈다. 나의 성격은 물론이고 성적, 교우관계, 진학하는 학교 등에 대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척들이었다. 심지어 작은 아빠가 나의 손톱까지 깍아준 기억도 있다. 그러나 아빠의 부재로 점점 왕래가 잦아들고 특히 엄마가 친척들을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고 우리들의 결혼과 함께 자연스레 멀어졌다. 나도 나이가 드는 것일까? 왜 이리 어릴적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와 작은 엄마는 마치 자매처럼 만나면 수다를 많이 떨었다. 엄마의 말이면 무조건 따르는 착한 작은 엄마, 나를 몰래 불러 용돈을 주거나 여의치 않으면 미안하다며 양말 선물을 부끄럽게 건내곤 하셨다. 어린 나이에 왜 나에게 미안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붙임성도 좋고 애교도 많으셔서 가족들 앞에서 남편을 너무 사랑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는 귀여운 분이셨다. 딸이 귀한 우리 집에서 사촌 여동생과 나는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무조건 언니를 따라하라면서 은근히 질투심, 경쟁심도 보이곤 했다. 그런 작은 엄마도 작은 아빠의 죽음으로 왕래를 끊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가셨다. 엄마도 그런 모습을 보고는 이해를 하는지 아무 말도 안하셨다.


작가의 엄마와 나의 엄마도 많은 면이 닮았다. 정의롭다가도 가족, 자식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이기심을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 당당하고 씩씩한 한국 여성의 특유한 강인성, 깐깐하고 깍쟁이 모습을 보이다가도 어느 새 허술하고 헛점을 보이며 다 퍼주는 화통한 모습 등이 닮았다.

그리고 가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유산처럼 쌓인 우리의 정, 추억, 사랑, 우애는 그 어떤 시련도 상처도 이기는 것 같다. 낯선 서울에서 어릴 적 먹던 싱아를 찾는 모습은 상처 난 짐승이 약초를 찾는 모습과 같다. 우리도 불현듯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또는 추억을 약으로 삼아 오늘을 견디며 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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