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칭 시점으로 쓴 소설을 처음 접하여 2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시점의 변화는 어떤 공간 속으로 빠져 헤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문득 작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너는, 당신은' 이라고 말하는 2인칭 시점은 광주 사태를 바라본 국민들의 2인칭 태도였다. 너희들에게 일어난 일을 몰랐다, 박정희, 전두환에 의해 통제되고 세뇌당하여 이제야 너희들을 바라본다는 철저한 타인의 시선.
소설 속에 광주 사태 이후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나온다. 치열했던 광장에 분수가 다시 나온다. 여학생은 시청에 전화한다. 제발 분수대의 물을 잠가달라고... 얼마나 흘렀다고 분수대의 물이 나오냐고...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전화한다. 우리 모두 저 분수대의 물처럼 아무 생각없이, 죄 의식 없이 양심없이 무지의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 싶다. 전두환의 재판에서 돌을 던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의 무책임한 역사의식과 이기심에 부끄러움 마음으로 바뀌었다. 오늘 흘린 눈물의 의미이다.
죽은 혼들이 서로 그림자가 되어 온 힘을 다해 위로를 전하는 구절이 나온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느낌으로 무언가가 옆에 와 있다는 느낌, 뭔가를 위로하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한다.
아들, 딸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엄마들이 모였다. 그들은 눈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등을 맞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우리를 흩어지게 해도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눈을 마주칠 것이라고 한다
진수와 '나'는 감옥에서 나온 후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다. 그들의 눈길은 투명한 촉수처럼 서로에게 뻗어 그늘을, 대화와 헛웃음으로 덮이지 않는 고통,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작가는 헐겁거나 뻑뻑한 단어들을 덧붙이고 꿰매 어떤 내용을 완성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묻는다. 네 장면 모두 수많은 사람들이, 사연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가볍게 한 몸이 되는 순간들이다. 가볍고 약한 존재라고 불리는 그들은 유리보다 투명하고 보석보다 단단한 무언가를 만들어 자신과 남을 위해 떳떳한 시간을 보내며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무심함과 폭력이 존재한다. 벌써 얼마나 지났다고 죽은 시체들로 쌓여 시취를 풍기던 광장의 분수에 물은 흐르고 있고 서울의 한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너무나 화려하다. 아직 기억이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 작은 힘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체념과 복종과 공허함으로 뒤덮이는 세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